사랑과 미움
사랑과 미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0.0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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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이 단원의 제목을 정하면서 사랑을 앞에 쓸까 미움을 앞에 쓸까? 하고 잠깐 고민을 해 보았다. 뭐 그런 것 까지 생각하느냐! 하겠지만 글이란 그런 게 아니다. 그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읽는 이에게 감동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생각다가 문득 어느 통계치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 중에서 1위가 ‘사랑’, 2위가 ‘어머니’라는 조사결과가 기억에 떠올라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앞에 놓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시간과 미워하는 시간 중 어느 시간이 더 많을까? 아마도 미워하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다. 사랑은 드물게 만나지만 미움은 언제나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 또한 전쟁으로 얼룩져 있으며 현재도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피를 흘리고 죽고 하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가 보다. 서로 싸우고 헐뜯고 경쟁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미움이 사랑보다 얼마나 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어느 성인도 철학자도 종교인도 미워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모두가 사랑하라고 가르쳐 왔고 지금도 사랑하라고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현실은 싸움과 전쟁의 연속일 뿐만 아니라 앞날도 늘 전쟁과 기아와 불평등 불균형 등 부정적인 것에 불안해하고 있다.

‘남들보다 우리를 미워하더라도 우리는 미워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진실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걱정보다 뜨거운 불이 없고 미움보다 많이 잃는 것이 없다. 이것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열반(涅槃)을 얻어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걱정은 가장 뜨거운 불이고 미움은 가장 큰 상실이다. 미워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미움과 걱정으로 잃게 되는 것들은 실로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가? 관용과 친절과 따뜻함 그리고 사랑과 나눔의 아름다움을 우리는 미워함으로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서 이러한 마음의 보배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무엇을 일러 인생의 가치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은 누군가를 미워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미워할 때 그 마음은 얼마나 괴로운 것이던가. 지우려고 하지만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이 미움의 마음이다. 필자도 그 누군가를 몹시 미워해 본 적이 있다. 마음속에서 털어 내고자 했지만 떨어낼 수가 없었다.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을 때는 꼭 나를 배신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리라. 라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해답은 미워하는 마음을 내 가슴속에서 털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역시 세월이 많이 흐르니 그러한 미움의 마음이 흐려져 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지워내지 못했으니 더 인내해야겠다. 지나고 보니 아무 소득도 없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에 너무 시간을 낭비했다는 회한이 느껴진다. 또 미워하는 마음을 놓지 못함으로써 나는 미움의 노예로 묶여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았었다. 어느 스님의 일기장을 보니 살다가 좋은 사람 만나면, ‘아 이 사람은 내 영혼을 맑혀주려 온 사람이구나.’ 미운 사람 만나면, ‘아 이 사람은 나에게 인욕을 가르쳐주는 스승이구나.’ 개구쟁이들을 보면 ‘아, 내 유년 시절의 보배로운 기억들을 잊지 않도록 해주는 인연이구나.’라고 썼다.

먼지로 뒤덮인 초목들이 비 온 후 깨끗해지듯이 미움이라는 먼지가 쌓이면 사랑이라는 빗물로 씻어내고 또 씻어내어야겠다.

인생이란 어쩌면 행복하기에도 짧은 시간인지 모른다. 바다의 저 깊은 곳이 나고 드는 물결을 그냥 지나치고 큰 산 위에 우뚝우뚝 서 있는 낙락장송이 스치는 바람들을 그냥 지나치듯이 우리 역시 미움과 걱정을 그냥 지나쳐야만 하겠다. 가슴속에 담아두지 않아야 한다. 담아두면 썩게 된다. 썩게 되면 썩는 냄새가 나게 된다. 썩는 냄새를 맡는 사람은 코를 찡그리고 피하게 된다. 사랑과 행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미운 마음과 걱정을 털어 내고 씻어내고 그곳에 머물지 말고 바다와 같이 넓음을 배우고 큰 산과 같이 누구든지 받아들이는 포용을 배워야 한다.

사바(娑婆)바에 존재하는 온 중생들이 언제쯤 조화롭게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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