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에서 길을 찾다
빗물에서 길을 찾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0.13 16: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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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ㆍ경남환경연구원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SF영화 ‘인터스텔라’에선 극심한 ‘가뭄’으로 황폐해진 지구의 미래가 나온다. 주인공 쿠퍼는 오랜 가뭄으로 ‘죽음의 땅’이 된 지구를 떠나 인류를 살릴 방법을 찾아 우주로 간다. 노장의 저력을 발휘한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도 가뭄으로 사막화된 세계에서 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년 전 보고서에서 “지금처럼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미국 남서부와 중부 대평원 지대에 2050년쯤부터 35년 이상 지속되는 대가뭄이 닥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00년 이래 최대의 가뭄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요즘 충청권 가뭄은 재앙수준이다. 여름 장마가 실종됐고 폭우를 동반한 9월 태풍도 중국, 일본으로 향하고 한반도를 통과하지 않은 탓이다. 충남 서북부 8개 지역과 충북 단양은 이달 초부터 제한 급수에 돌입했다. 저수율이 뚝 떨어진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내년 논농사가 어려울 뿐 아니라 수도권 식수원까지 위협받을까 우려하고 있다. 1998년 완공된 충남 보령댐은 17년 만에 처음으로 물이 차 있어야 할 바닥이 쩍쩍 갈라진 채 잡초가 무성한 벌판으로 변했다.

우리나라 년 강수량 1,274㎜에 비해 올 강수량이 612.6㎜로 예년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1973년 관측한 이래 올해가 최저 강수량이다. 무엇보다 숲이 건조해지면서 산불도 걱정이다. 중세의 가뭄은 자연재해였지만 앞으로 우려되는 대가뭄은 인재(人才)라는 것이 NASA의 분석이다.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인류의 활동은 지구를 계속 뜨겁게 만들고 있다. 강수량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기온이 올라가면서 흙속의 수분마저 대기 중으로 증발해 토양이 마르는 악순환이 이어져 '슈퍼 가뭄'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1년 강우량의 3분의 2가 집중되고, 국토의 65퍼센트가 산악지형이라 기후와 지형이 물을 관리하기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럼에도 빗물을 잘 관리하면서 금수강산을 유지해왔다.

나무에서 떨어진 빗물을 항아리에 받아 사용하는 제주도의 전통적 집수 방식 ‘참항’그러한 물 관리의 비결이 우리 전통과 철학에 살아남아 있다. 마을을 나타내는‘洞’자는‘물 水’자와‘같을 同’자로 이뤄졌다.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물에 의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줘 자발적으로 물을 낭비하거나 오염시키지 않도록 했다.

개발을 할 때도 물 관리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 개발 전과 후의 물 상태를 같이(同) 유지하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하류에 홍수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상류에서 빗물을 저장하고, 지하수를 충전시켜 천천히 물이 흘러 나가도록 전국에 수많은 저수지와 웅덩이를 만들어놓았다. 이것은 홍익인간 철학과도 일치한다.

손바닥을 국토로 비유하면 큰 강은 굵은 손금, 작은 강은 가는 손금으로 볼 수 있다. 국토 전체 면에 내린 빗물이 선으로 이뤄진 강을 통해 하류로 내려간다. 강물의 양은 빗물과 지하수가 흘러 들어가는 양에 의존하므로 전체 유역에 떨어지는 빗물 관리를 잘하면 강물의 양을 조절해서 강에 대한 안전도를 보완할 수 있다.

빗물 관리를 하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빗물이 떨어진 자리 근처에서 모아서 쓰면 비교적 깨끗하기 때문에 처리와 운송에 드는 에너지가 적게 든다. 여름에 모아둔 빗물을 건물의 지붕이나 도로에 뿌려주면 열섬을 방지하는 효과와 냉방에너지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모아둔 빗물로 지역사회의 텃밭을 가꾸면 식량의 자급에도 도움이 되고, 음식물의 이동거리를 줄일 수 있다. 빗물저장조와 지역 텃밭을 지역주민들 사이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빗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빗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으는 방향으로 조례를 만들어 정책을 집행하는 이른바 ‘레인시티’를 만들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47개의 ‘레인시티’가 있다. 학교나 군부대에 설치하면 젊은 사람들은 환경과 자원에 대한 중요성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물 관리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려줘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해야 한다. 지역에 작은 규모의 빗물 관리 시설을 많이 만들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빗물을 땅에서 모으면 혐오적인 기피현상인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시설이지만, 땅 위에서 모으면 지역 발전을 꾀하고 돈을 버는 선호시설인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시설이 될 수 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동·식물, 그리고 후손까지도 모두가 잘되게 하는 해피(Happy)한 물이 어디 있을까? 그것은 빗물이다.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떨어지기 때문에 갈등과 싸움의 소지도 없어진다. 땅에 떨어지기 전의 빗물이야말로 가장 깨끗한 물이다. 빗물의 존재와 가치를 깨닫는 순간 모든 사람은 구태여 싸움을 하지 않아도 잘 살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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