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진주와 서부경남에 거목이 필요한 시대
지금 진주와 서부경남에 거목이 필요한 시대
  • 김영우기자
  • 승인 2015.10.18 13:48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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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감사원 감사위원

 
감사원 김영호 감사위원(차관급)은 진주 출신으로 감사원에서만 30년을 근무한 우리나라 최고의 ‘감사통’이다. 김 위원은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총선 출마설이 제기되면서 과연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인지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본인은 아직 총선 출마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김 위원의 출마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이다. 김 위원은 인터뷰에서 “선출직은 목사님이나 스님과 같은 성직자로 생계를 영위하기 위한 직업으로 그 직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소명을 따르기 위해서 아니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일 것”이라며 “따라서 국가와 지역사회에 대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덕목을 갖추려 노력중”이라는 말로 총선 출마에 대한 의지를 에둘러 표현했다. /편집자 주


다음은 김위원과의 일문일답.

-진주 촌놈이 아무런 빽도 없이 감사원 사무총장과 감사위원까지 올라간 비결은?
▲제가 빽이 없다니요 저는 큰 빽이 있습니다. 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많은 고향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들과 자주 어울려 지내오면서 그 분들의 높은 기대와 한없는 성원이 제게 큰 힘이 되었지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항상 저를 채찍질하게 되었으니까요. 또, (웃으며) 감사원이 저와 궁합이 잘 맞은 것 같습니다. 감사원의 ‘능력과 실적을 우선시하는’ 인사 관행으로 인해 저 같은 사람이 높게 평가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사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당당히 배짱 있게 맞서야 성공할 수 있는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진주 사람들의 그 기질이 제게도 배어 있어서 명감사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의리도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사람들을 좋아하고 친구들 일에 나서기 좋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진주에 있는 동기들의 부탁으로 서울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기회를 조직해서 오랜 기간 회장을 맡았었고, 또 고교 재경 총동창회의 주관기 회장까지 맡게 되어 심지어 어느 해에는 초중고 재경 동기회장을 동시에 맡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중학교 저희 기수가 총동창회 주관기를 맡을 무렵, 진주 친구들이 저더러 재경동기회를 조직해 달라고 하면서 수도권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100여명의 명단을 주더라고요. 그런데 명단에는 이름과 주소만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편지를 보내야했는데 타이핑을 하지 않고 제 아내와 나누어 손으로 써서 보냈지요. 친구들이 감동을 받았다면서 첫 모임에 30여명이 나왔고 지금까지 모임이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성향 덕분에 지금은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상임(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지요.     

▲ 감사위원으로 선임된 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고 있다.
-책상에 항상 태극기를 두고 있는 사연이 있다고 하는데  
▲2013년 4월 감사원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는 보도가 나가자, 많은 축하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 중 한 초등학교 동기가 보낸 문자가 기쁨에 겨워있던 제 가슴 한 구석을 콕 찔렀습니다. “영호야 사무총장 승진을 축하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태극기를 바라보고 머리가 아플 때는 대통령 사진을 바라보아라.” 친구의 메시지를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국익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그 자리가 아무리 골치 아픈 자리라 해도 대통령만큼은 하겠느냐 감사하는 맘으로 일해라.’ 이 초등학교 동기는 당시 상봉동에서 조그만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하루가 고달프지만 올바른 가치기준을 가지고 의미 있게 살아온 친구라 생각되었습니다. 이 친구의 문자는 그때부터 제 공직생활의 지침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책상에 태극기를 두게 되었답니다. 그 후로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 때면, 친구의 조언처럼 책상위의 태극기와 액자 속의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려 노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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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불의와 타협않고 당당히 맞서야 성공
불의 참지 못하는 진주사람 기질 저에게 있어

중요 결정 국가와 국민위한 국익 관점서 판단
국가 국민위해 늘 감사 마음으로 일하려 노력

진주 지도자들이 머리 맞대고 현안 논의해야
진주의 물적 인적 자원 총동원 체계 구축해야

선출직은 목사님이나 스님같은 성직이라 생각
국가 지역사회 사명감 소명의식 구비 노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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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에 오래 근무하면서 고향인 진주로부터 민원도 많았을 텐데요
▲감사원에 오래 근무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행정 지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분야의 민원이든 내용을 쉽게 빨리 이해하고 이런 저런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저절로 생깁니다. 따라서 진주뿐 아니라 산청, 하동, 함양 등 서부경남으로부터 공적 사적 민원이 많았지요. 공적인 것들은 학교시설, 대학연구비, 도로, 산업단지, 국제행사 유치 등과 관련된 것으로 기억되고요. 사적인 것들은 공공기관으로부터 인허가나 세금문제 등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연락을 하셨는데, 시민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것도 감사원의 기능이므로 성심껏 조언해 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마 섭섭하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 진주시 상평동 솔밭공원에서 자장면 나눠주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진주에 대한 기억을 말씀해 주십시오
▲초등학교 시절에는 참으로 개구쟁이였습니다. 사촌리나 비봉산에 친구들과 어울려 산딸기를 따러 다니던 기억이 있고요. 집에서 제재소를 운영해서 목재와 공구를 많이 가지고 놀아 목공에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꽂이와 스케토(앉아서 지치는 스케이트)를 만들어 동네 형들에게 팔기도 했죠. 당시에는 겨울이 되면 가마못에 얼음이 꽁꽁 얼어 그 넓은 연못에서 스케토를 신나게 탔던 기억이 새롭네요. 중학교 3학년 개천예술제 때 전 학년 모두가 ‘고교입시 합격’이란 소원을 적은 유등을 띄웠고요. 고2 시절에 우리학교도 개천예술제 가장행렬에 참가했었는데 저는 양반 모습을 하고 지금 노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는 할머니로 가장해서 익살스런 부부로 구경꾼들을 웃겼던 적도 있었고요.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미천면 안간리 내리실 마을에서 과수원을 하셨는데 주말마다 부모님께 가서 풀 베고 가지치고 거름 주면서 농사일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32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소회는
▲지난 32년 공직생활 중 30년을 감사원에 있었습니다. 감사라는 것이 다른 사람이 한 일의 잘잘못을 따지고 문제가 있으면 사업 중단, 회수, 세금추징, 징계 심지어는 고발 등 타인에게 부담이 되는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속성상 감사관도 심리적으로 많은 고통이 따릅니다. 또 이해관계인 등 외부의 압박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직원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환자가 많은 편입니다. 이런 어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수용성이 높은 감사를 하는 것이 최고의 비법입니다. 수용성이 높은 감사는 상대방의 의견과 형편을 충분히 들어 주어야 가능하죠. 감사를 영어로 ‘audit’이라고 하는데 ‘audition’과 같이 듣는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됐다 합니다. 감사는 종국에는 듣는 것이지요. 그냥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죠.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사람들의 말과 행동 저편에 있는 감성에 공감할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결국은 사람들과 어우러져봐야 이런 사정과 저런 형편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죠. 저는 어울림을 좋아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많은 사람들의 애로사항을 듣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감사경험을 통해 본 우리나라 관료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제 감사경험상 우리나라 관료들은 대부분 전문성이 높고 우수합니다. 그러나 용기와 배짱이 부족한 것이 문제입니다. 4대강사업이나 해외자원개발사업 또 각 지자체의 무분별한 산업단지 개발사업 등을 보면 정책의 입안자나 최고결정자는 국가나 해당지역에 이익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추진합니다. 그런데 감사를 해보면 대부분 그 일을 집행하는 관료들은 그대로 급하게 추진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지금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소상히 예측하여 보고서까지 작성해놓고 정작 보고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약 이러 이러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재검토하거나 사업일정을 조정하자고 건의하였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저는 그 건의가 수용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수용이 안 되면 직을 걸고 재차 건의해볼 용기가 있어야지요. 

-진주의 최고 현안이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지금 도시의 규모화, 구도심문제, 혁신도시의 진주화, 산업화, 관광활성화, 전통과 문화의 계승, 교육도시의 부활 등 여러 과제가 있지만 저는 더욱 근본적인 것은 지도자들이 시민들이 이러한 과제를 설정하고 해결하는데 소통하고 단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하고 과제의 달성을 위해 단결해서 진주가 가진 물적 인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지역의 경우 단체장, 정치지도자, 시민들이 분담해서 중앙정부의 그 지역 출신의 어떤 인사들과 지인들을 방문하여 어떤 부분에 협조를 구할 것인지 하는 문서로 된 작전계획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 지역사람이 아닌 제게도 지인을 동원하여 집단적으로 체계적으로 찾아와 협조를 구하더군요. 이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들 간, 지도층과 시민들 간 서로 화합해서 협력하는 것이 첫째라고 봅니다.

▲ 대구 국민·기업 불편신고센터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이 있다면, 지역사회에서는 출마여부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지금 진주와 서부경남에 거목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행정부나 공공기관 그리고 기업에 진주와 서부경남의 인재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우리의 인재들로 하여금 제자리를 찾게 하고 이들을 한데 묶어야 힘이 되어 낙후된 지역의 각종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지역은 지역 출신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하여 자기 지역 사람을 중요자리에 앉히려 노력하고 이러한 인재들과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역할을 분담합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이러한 역할을 할 거목이 진주와 서부경남에는 없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있어야 하고 희생정신과 사명감도 있어야합니다. 선출직은 목사님이나 스님과 같은 성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은 생계를 영위하기 위한 직업으로 그 직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소명을 따르기 위해서 아니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와 지역사회에 대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덕목을 갖추려 노력중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김영우기자

■김영호 감사위원은

- 1961년 8월 7일
- 진주 봉원초등, 남중, 진주고 졸업
- 서울대 사회교육과 졸업
-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행정학석사
- 미국 남가주대학교 대학원 졸업, 정책학석사
-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기술정책박사과정 수료
- 제27회 행정고시 합격
- 감사원 1국3과장, 국제협력과장, 재정금융2과장, 재정금융총괄과장
- 감사원 심의관(인도 PWC 파견)
- 감사원 국제협력관, 공보관 (대변인), 특별조사국장, 재정경제감사국장
- 감사원 기획관리실장
- 감사원 제2사무차장
- 감사원 사무총장(차관급)
- 현 감사원 감사위원(차관급)
- 현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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