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도 봉사도 돈을 번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사업도 봉사도 돈을 번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 김상목기자
  • 승인 2015.10.20 16:34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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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실버페스티벌 석재수 위원장 <석광ITS 대표이사>

 
석재수 실버페스티벌 운영위원장은 성공한 사업가의 면모와 각종 봉사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실버페스티벌은 영호남을 아우르는 실버세대를 위한 유일한 축제의 장으로 어르신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실버행사다. 또한 석광ITS의 대표이사로 조그만 전기상에서 시작해 탁월한 사업감각으로 국내는 물론 몽골 울란바토르의 신호체계를 만드는 등 국·내외 신호등업계에서 알아주는 사업가로 통한다. “돈을 번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선친의 말을 가슴깊이 세기고 “100원을 벌면 90원만 쓴다”는 마인드로 봉사와 사업을 하는 석재수 위원장을 소개한다. 올해 실버페스티벌 행사는 오는 25일 오후 3시 도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다음은 석 위원장과 일문일답.

-대한민국 실버페스티벌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2005년도에 어르신들 경로잔치를 시작하면서 노래자랑을 해보니까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고 즐거워 하셔서 경남전역을 대상으로 경연대회를 열어보자고 해서 시작했다. 6회째부터 경남에서만 할게 아니라 부산 경남 전남으로 확대를 하자 해서 확대를 시켰더니 참가자들이 줄을 이어서 전국대회로 확대해보자 해서 4년전에 대한민국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행사를 진행해 지금 전국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참가하고 있다.

-지방에서 열리는 전국 실버행사는 최초가 아닌가
▲전국 지자체에서 경로잔치 겸 공연은 많으나 순수하게 가요나 장기라던지 이런 행사들을 직접 하는 곳은 진주가 처음이다.

▲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대한민국 실버페스티벌은 어르신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다.
-처음부터 위원장을 맡아 진행해 왔나
▲실버페스티벌에 대한민국이란 타이틀을 달기 전에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라던지 하는 실버 장기대회를 하고 있었는데 5~6년전에 실버페스티벌로 바꾸면서 해보니까 제가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정말 의미있는 활동이다 생각하게 된 것이 지금 우리가 평화롭게 사는 것도 어르신들 덕이다. 한해한해 하다보니 올해 열 번째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

-이정도 규모의 행사를 치루기 위해서는 경비가 상당할텐데 어떻게 충당하나
▲경비는 대략 4500여만원 정도 든다. 저 혼자 충당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위원회가 따로 있다 위원장 이하 부위원장, 위원들이 십시일반 찬조를 해서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2012년 실버페스티벌 본선
-행사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
▲집행위원회에서 전남 부산 경남에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요양원이나 경로당 등에 공문을 보내 접수받아 본선 한달전에 예선을 치른다. 그동안은 유등축제에 맞춰서 개최했는데 올해는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는 차원에서 행사를 옮겨 유등축제가 끝난 뒤인 25일 개최했다. 관객동원이 최대 관건인데 그부분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티켓을 만들면서 경품을 걸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조그만 상품이라도 타가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 위원들의 협찬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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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경로잔치로 시작해
전국 유일한 실버세대 축제의 장
어르신 경연대회 행복노년 전파

청년회의소 활동 봉사의미 깨달아 
진주성로타리 회장으로 나눔실천
부친뜻 따라 “돈 번만큼 사회 환원”

신호등 제조사 석광ITS 대표이사
횡단보도 숫자 개발 자체생산 시공

신호등 관련 세계최고 기업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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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사가 노래경연인데 다른 행사도 있는지
▲실버페스티벌 안에는 가요, 장기, 합창 세파트로 나눠져 있다. 외적으로는 다사랑 봉사회에서 노력봉사라고 해서 교도소 봉사, 김장담그기 봉사 등 다양한 봉사를 펼치고 있다. 또한 행사장에 부스를 마련해 영정사진, 미용봉사, 한방봉사,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는데 문화예술회관 본관을 사용하면 다른 부스를 올해는 만들 수 없다고 해서 못했다.

-실버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사람은 몇 명인가
▲예선에서는 가요는 150명정도, 장기부분은 30팀정도, 합창이 10팀정도 참가한다. 본선에는 가요는 8명, 장기는 5팀, 합창은 5팀이 진출한다. 가요부분에서 대상을 받으면 한국가수협회에서 가수증이 나간다. 전년도 대상자는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연변 등 초청공연을 다니는 걸로 안다.

-타지역 참가자들의 현황과 보완점은
▲순천 광양 부산 등에서도 참가를 하는데 아무래도 기량이 조금 떨어져서 본선에 못 올라가서 그렇지 타지에서도 많이 참가를 하고 있다. 교통편, 경비 부분이 수반되다보니 참여도가 조금 떨어진다. 전국적으로 확대를 시키기 위해 시상금, 가수증 이런부분을 좀 더 확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예산부분이 걸림돌이다. 지금 다사랑봉사회 회원이 400여명이 되는데 기부 영수증을 발급할 수 없는 단체여서 총회를 열어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다. 정부 기부단체로 등재가 되어서 내년부터는 그런부분에서 해결될 것이다.
LH를 목표로 잡는게 그런 대기업이 지원을 많이 하면 LH는 각 지역본부가 있기 때문에 공동주최로 가게 되면 예심을 각 지방본부에서 치루고 본선을 진주에서 치룰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전국대회로 빨리 확산을 시킬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가요 부분은 가수협회장이 직접 내려와서 심사를 본다. 장기와 합창부분은 지역 음악계에 유명인사들로 구성해서 보고 있다.

-참가자들 반응은 어떤가
▲어르신들이 출연을 하기 위해서 가족들 앞에서 연습도 하고 학원도 다닌다고 들었다. 특히 가족들 앞에서 연습을 하면서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일가친척들까지 참가하다보니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은 주로 노인들이 생활하는 곳 위주로 홍보하고 있지만 앞으로 젊은 세대들도 함께할 수 있는 부분들을 검토하고 있다.

-위원장으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지난달에도 예심에서 내가 화장실을 갔는데 노인분들이 화장실에서 연습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안떨려요” 하고 물어보니 “누구요”라고 묻길래 “위원장입니다”라고 했더니 “떨리지 떨리는데 혹시나 박자나 가사를 놓칠까봐 걱정되서 떨려요. 위원장님 잘봐주이소” 하면서 화장실에서도 연습하는 그모습, 합창 참가자들도 젊은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도 전혀 거리낌 없이 연습을 하고 하는 것을 보면 저희 부모님 같아서 기분이 엄청 좋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모습들을 보면 이 행사만은 내가 죽을때까지 해야겠구나 생각한다.

-진주성로타리 회장을 포함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진주성로타리는 6년정도 활동했다. 그전에 JCI라고 한국청년회의소에서 93년부터 활동을 해서 2008년까지 활동을 했다 남강청년회의소 회장도 2004년에 하고 중앙에 올라가서 초대 해외사업실장을 하면서 봉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중국 연변 조선족 2세들 심장병 수술사업, 우즈벡에 있는 고려인 3세들을 대상으로 심장병 수술사업, 장학금 지급사업, 몽골에서는 심정(지하수)과 진료소 만들어주기 사업을 진행했다. 이때 봉사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봉사활동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님 말씀이 “돈을 번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100원을 벌면 90원을 쓴다는 자세로 사업을 해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나도 뭔가 단체에 들어가서 봉사를 해보자 해서 단체에 뛰어들었다. 개인적으로도 회사에서 기독유아원에 매달 한번씩 생필품 전달과 봉사를 한다. 직원들도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봉사라는게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해도 뜻깊다고 생각한다.

-봉사를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아무래도 상대방이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고마워 할때가 가슴 뭉클하고 보람을 느낀다.

▲ 석재수 위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석광ITS 전경.
-석광ITS는 언제 설립되었나
▲1989년 본성동에 작은 전기재료, 수리 판매하는 석광전기로 시작했다 홍보를 하기 위해 명함과 스티커에 사진을 처음 넣었다. 그뒤 명함과 스티커를 진주전역을 직접 다니면서 두꺼비집에 붙였다. 출장비는 받지 않고 재료비만 받는다고 적어놨더니 전기가 고장나면 저를 찾았다. 그때 당시에는 전기도 수리해주지만 지붕에 물이센다고 하면 슬레트를 사서 교체해주고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 하면 변기도 뚫어주고 실제 하는건 전기상이었지만 사소한걸 많이 해줬다. 그러다보니 “석광전기 젊은 친구가 못고치는게 없더라”고 소문이 나면서 집을 새로 지으면 전기공사는 저한테 맡겼다. 그게 시발점이 되어 91년 전기면허를 따고 석광전기공사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전기일을 하게 됐다. 그러던 중 93년도에 우연히 공단로타리를 철거하면서 신호등을 세우는걸 보고 “아 저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 경남에 신호등회사가 없었다. 건축 전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신호등은 주기적으로 계속 설치가 될 것 같아서 업종전환을 하게 됐다. 서울에 있는 신호등 회사에서 기술을 배워와 진주에서 처음 수주한게 충무시청 앞 신호기였다. 이윤창출보다는 가급적이면 설계시방도서대로 정확하고 완벽하게 시공하자는 마인드로 시공했다. 그러자 경남전역에서 기술력과 빠른 A/S로 호평받았다. 99년 ㈜석광전기신호등으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법인으로 전환했다. 그때 당시 서울업체에서 제품을 받아와서 시공하다보니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어 제품개발에 뛰어들었다. 횡단보도 숫자 신호등을 개발했다. 그때 그것뿐만 아니라 신호기계와 등도 새로 만들고 하다보니 지금은 자체생산해서 시공하고 있다. 2012년도에 상호를 석광전기신호등에서 ㈜석광ITS로 회사명을 개명했다. 이후에 상평공단에 있던 회사를 지난해 4월 정촌산단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지금의 회사가 됐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신호체계를 직접 다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울란바토르 시내 전체 신호등을 제가 다 만들었다. 제가 JCI 해외사업실장을 하면서 인연이 닿아서 몽골에 가보니 도로는 한국형인데 차는 일본식이라 교통혼잡이 상당했다. 그래서 외무장관에게 최첨단 신호체계를 기증하겠다고 약속하고 한국에 와서 알아보니 우리나라에서 차관을 빌려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중소기업이 정부공사를 수주하기 힘든 환경이라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공동이행방식으로 해서 국제제안입찰로 낙찰받았다. 몽골 정서를 고려한 신호체계 설계는 저희 회사가 다했다. 거의 1년 넘게 작업을 거쳐서 사업안을 제출하니 그걸 반영해서 신호체계를 만들기 시작해 2011년경에 완공했다. 지금은 몽골에 일부 수출만 하는데 한 2년 전부터 몽골 현지인 4명정도를 불러들려 기술연수를 해주고 있다. 그래서 현지에서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중심부 지역에는 ITS 센터가 있어 저희 회사 제품과 호환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 올해도 기술연수를 위해 2명 정도 초청할 예정이다.

 
-평소 기업을 경영하면서 경영 소신은
▲회사가 오늘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직원들과 20년 가까이 함께 고생하며 회사를 키워왔다. 사업을 하면서 제 개인의 영달보다는 직원들에게 이윤을 돌려주는게 맞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통 기업가들은 재산 부풀리기에 열중하고 직원에 대한부분은 조금 소극적이더라 그래서 무슨일이 있어도 직원들과 같이 간다 회사가 이만큼 크기까지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줘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생한 직원들이에게 그만큼 혜택이 돌아가게 하고 있다.

-앞으로 포부나 계획
▲사업도 봉사도 아버님 말씀처럼 많은 돈을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는게 제 꿈이다. 지금은 석광하면 “아 그신호등회사”라고 한다. 전국에서 신호등 제조회사는 20여개 업체가 있지만 경남에는 유일하다. 지금 신호등 업계에서 TOP 10 안에는 진입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신호등 관련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게 제 꿈이다. 글/김상목·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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