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전(原電)의 역사
우리나라 원전(原電)의 역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0.27 18:3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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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제2차 석유파동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던 1978년 봄 경남 양산군의 한 바닷가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을 내리게 한 가공할 살상무기로 알려졌던 원자력이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인 영국의 콜더홀 원전이 가동된 지 18년 만에 21번째로 원자로에 불을 지핀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사업은 이승만 박정희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정치 지도자들의 원자력에 대한 관심과 지원 아래 일찍부터 원자력청과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하여 인력양성과 기술도입 기반을 축적하였으며 원자력 사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 왔다. 1962년 11월 당시 원자력원에 설치된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는 원전건설의 타당성 검토와 건설입지 조사를 착수하여 건설지점을 경남 양산군 장안면 고리로 정하고 1970년 6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와 건설 계약 체결하였다.

석유파동, 물가상승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1978년 4월 27일 87개월의 대역사를 마무리 지었다. 고리 1호기는 탈석유의 시동을 건 선두주자답게 계약에서 완공까지 두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었으나 무사하게 마쳤다. 건설비는 외국 차관에 의존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9기에서 760만㎾h의 원전설비를 가지고 600만㎾h의 전력을 생산 세계 10위권의 원전보유국이 되었고 원전은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의 40%를 차지하는 주력 전원이 되었다.

원전 건설기술 자립율 95%와 세계 최일류 수준의 운영기술을 보유하여 질적인 면에서도 원전 선진국으로서 위치를 다지게 되었다. 1979년 이후 우리나라는 영광 1․2호기, 울진1․2호기를 발주하였다. 원자력 시장은 종전의 판매자 시장에서 구매자 시장으로 바뀌어진 상태여서 우리나라는 기술자립과 국산화 추진을 유리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건설비도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원전사업 발전의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20여년 동안 막대한 재원과 노력을 투입한 원전사업의 성과는 컸다. 원자력의 도입은 석유중심의 발전원을 다원화시켜 경제발전에 급속히 증가하여 온 전력을 안정적으로 값싸게 뒷받침하여 왔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원전 건설로 국내산업이 선진화의 기반을 다진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효과의 하나이다. 원전건설에서 중공업 추진에 대한 기초 기술을 획득하여 조선, 자동차, 건설업의 해외시장 진출에 기틀을 마련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던 것이다. 결국 원전사업은 우리나라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아시아의 등불로 비약하는 국제화 선진화의 불을 밝혔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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