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는 방법
그녀가 사는 방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1.03 15:3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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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그녀의 나이는 이제 쉰을 넘겼다. 그녀가 길을 가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연히 한번 더 쳐다볼 만큼 그녀는 살이 찌다. 살이 찐 만큼 손도 커서 무엇이든지 푸짐하다. 요리를 해도 푸짐하게 해서 이웃에 나누고 과일을 사도 넉넉하게 사서 나눈다. 그녀는 지금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 운영도 푸짐하게 해서 그녀의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한 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말대로 대박인 것이다. 그런 그녀가 사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오늘은 그것을 추적해봤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인정이 많았다. 비록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친척들 집의 대소사엔 일일이 다니며 일을 도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 사람 일을 추어낼 줄 알게 되자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의 일도 제 일처럼 하는 통에 한번 함께 일을 해본 사람은 그녀를 또 찾게 마련이었다. 또 찾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물고 늘어진다. 워낙에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하기도 하지만 손이 빠르고 매웠다. 웬만한 남자는 따라오지도 못하는 일솜씨였던 것이다.

일찍이 그녀를 물고 늘어진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녀의 첫 남편이 되어버렸다. 첫 딸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는 이 남자는 본색을 드러내며 밖으로 나돌았다. 이른바 역마살이 낀 남자였던 것. 그녀의 모진 세월이 시작됐다. 일단 이혼을 한 그녀는 다시 일을 잘하며 인정과 사랑이 많은 여자로 살게 된다. 한편으론 딸을 혼자 키우면서도 연애가 하고 싶은 남자가 있으면 기꺼이 사랑도 했다. 아무리 인정이 많고 사랑이 많은 그녀라도 연애에는 용빼는 재주가 없다. 더러 이별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남들이 속없는 여자라도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손해를 보는 연애만 골라 했다.

그리고 그녀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연애를 이제 그만, 하고 선을 딱 그었다. 딱 선을 긋고 봤더니 세상의 돈이란 돈은 그녀를 향해 선을 딱 긋고 있었다. 게다가 어느새, 정말 어느 사이에 살이 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연히 쳐다보게 되는 뚱보가 되어 있었다. 캬아, 인생하고는!! 여기서 주저 앉았으면 그녀는 그녀가 못 됐을 것이다. 흘러간 노래나 흥얼거리는 그렇고 그런 여자가 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이 글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아, 그리고 그녀의 딸은 이제 갓 스무살을 넘겨서 한창 때의 그녀처럼 이뻤다. 가만히 딸을 쳐다보던 그녀는 자신이 부자라는 걸 깨달았다. 딸을 부둥켜 안고 밤새 딸도 울고 그녀도 울었다. 딸이 먼저 울음을 그쳤다. 아직도 울고 있는 엄마를 말갛게 쳐다봤다. 그 눈이 얼마나 처연하고 쓸쓸한지. 그녀는 다시 한바탕 울고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책도 했다. 사춘기라고 속을 썩이던 딸에게 심하게 했던 일들이 뼈아프게 후회됐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의 부기가 사흘이 지나도 빠지지 않았다고. 참 모진 세월이었다.

인생하고는, 참 모진 세월은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이제 그 얄라궂은 연애와는 영원히 안녕을 고하고 이제 딸을 위해서만 순수한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 돈을 벌어야 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일은 무섭지 않았다. 마음먹고 일을 했더니 돈도 잘 벌렸다. 일이 무섭지 않은 한 인생도 무섭지 않았다. 그까이꺼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일이란 언제나 ‘살기’의 편이었다.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달은 어느 날 밤 그녀는 인생이 참으로 귀하고 즐겁다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딱히 누구누구가 감사한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감사했다. 딸아이와 연애를 하던 녀석이 딸아이를 떠나도 감사했다. 그렇게 떠날 ‘늠’이라면 일찌감치 떠나주어서 감사했다. 실연이 서러워 딸이 울면 가출하지 않고 집에서 울어주어서 감사했다. 일을 하다 손을 베면 손가락이 아주 부러지지 않아서 감사하고 약간의 피흘림으로 자신의 부주의를 지적해준 자신의 운명에 감사했다.

마음으로만 감사한 것도 아니었다. 딸아, 엄마 앞에서 울어주어서 고맙다고 말로 마음을 전하며 함께 울었다. 내가 부주의해서 손가락을 다쳤으니 손가락에게 미안하다고 소리내어 사과하며 다시는 부주의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일을 했는데 돈을 주기를 일주일을 미루면 열흘 미루지 않아서 감사했다. 그렇다고 홍어 거시기처럼 무조건 참고 견디는 건 그녀가 아니었다. 누군가 모욕을 주거나 부당하게 도전해오면 아직도 남산만한 배를 쑥 내밀며 무섭게 상대를 작살냈다.

이제쯤 그녀를 감히 모욕 줄 사람도 없게 됐다. 그녀는 부자가 됐기 때문이다. 부자도 올바른 부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달에 한번씩 60세 이상의 노인분들에게 잔치를 열어 귀한 음식을 대접한다. 나는 그녀를 보며 감사하는 마음이 곧 ‘겸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겸손한 줄도 모르고 인생에게 마냥 고마워한다. 우리 동네에게 가장 겸손한 그녀가 부자로 잘 사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이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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