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의 한 자락
우국의 한 자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1.15 18:0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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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나이 들수록 공자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이 양반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보겠다고 무진 애를 썼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이상적인 대동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치에 대해 자주자주 언급을 했고 실제로도 정치적인 힘을 얻고자 이른바 ‘제국주유’(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만년에는 고향인 노나라로 되돌아가 연구와 교육에 열정을 쏟기도 했다.


나도 공자와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세상’의 문제들을 바로잡아 보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걱정되는 문제들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가장 가까운 곳이 몸담고 있는 직장이다 보니 ‘대학’을 걱정할 때가 무엇보다 많다. 지금 이 나라의 대학들은 과장 없이 ‘산더미’ 만큼의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 문제들은 비단 어느 한 특정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모든 대학의 문제들이고, 그것들은 초중고 전반에 걸친 ‘교육’의 문제(예컨대 입시위주 교육, 사교육)와도 당연히 얽혀 있으며, 따라서 이 나라 전체의 현실(예컨대 청년실업, 학벌사회 등등)과도 직결돼 있다. 그러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그런 교육현실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목소리는 높은데 세월이 흘러도 나아지는 것은 전혀 없다. 이런저런 푸념을 하던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에... 만일에 내게 어떤 정치적인 힘이 주어진다면, 그렇다면 하다못해 이것 하나만은 꼭 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무엇보다 대학의 기본틀을 좀 바꿔놓는 것이다. 우선 대학들을 이공계 중심으로 재편한다. 응? 철학자가 그런 소리를? 인문 사회계로부터 강한 반발이 있겠지만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일단 그게 옳다. 그럼 인문 사회계는? 졸업 후 취업이 가능한 최소한의 규모로 소수 정예화하는 것이다. 그 역할은 주로 국립대에서 담당한다. 그리고 모든 대학 모든 전공을 불문하고 인문 중심의 교양교육을 대폭 강화한다. 졸업조건으로 교양인증제를 만들어 고전 100권을 읽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 그것으로써 우선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들고, 그리고 이공계의 전공을 통해 ‘전문가’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나서 이것만 제대로 해도 ‘인성이 갖추어진 우수한 기술자’가 (철저한 정신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며) 국가에 기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대학 전체의 규모를 대폭 축소해 수급조절을 해야 한다. (단, 고졸이나 전문대졸 직업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장치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면 천문학적인 교육비의 지출을 국가의 다른 시급한 분야로 돌릴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들은 정부가 완전히 손을 떼고 자율을 보장한 후 철저한 자유경쟁에 내맡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도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질과 경쟁력이 높아지는 구조가 마련될 수 있다. 거국적인 토론을 거쳐 저 서울 강남식의 학원산업이 불필요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특정지역에 유리한 학군제도 폐지하는 한편 각 지방의 명문 고등학교들을 중점 육성한다. 수도권대학의 입시에서 지방 쿼터제를 실시하면 이는 비교적 간단히 실현될 수 있다. 그러면 부동산 문제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 반면 정부는 지방의 국립대학들을 정책적으로 전폭 지원하면서 강화해 나간다. 최소한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 이상의 위치로 끌어올린다. 60, 70년대에는 그것이 현실이었으니 불가능한 목표는 절대 아니다. (지방의 모든 국립대학들이 제가끔 다 명문인 독일의 대학들이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배워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그런 지방명문 국립대들을 선호하게 되면 수도권 인구분산의 효과도 생겨난다. 각 혁신도시의 기관-기업들에게는 채용시 지역할당제를 시행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한다. 그러면 죽어가는 지방도시들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고 전국적인 삶의 균형이 회복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국립대학의 통합은 필수적이다. 이미 수없이 논의된 1도1국립대 정책은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중복된 일부를 줄이고 전체적으로는 덩치를 키워 세계와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간단해 보일 수도 있고 어려워 보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실행하는’ 것이고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만 제대로 해내도 한국의 교육현실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신입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무엇보다 졸업생의 질이 크게 달라지고 그들이 국가발전에 제대로 공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중앙과 지방의 양극화도 균형을 찾게 된다. 지방은 다시금 긍지를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념과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정치인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관료들의 능력도 당연히 요구된다. ‘정치’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정(政)은 정(正)이다’(정치는 바로잡음이다)라고 설파했다. 지금의 대학은, 그 구조와 현실은 과연 올바른가. 오늘의 정치는 과연 올바른 일들을 올바로 하고 있는가. 사회는 그것을 제대로 요구하고 있는가. 먼저 그 반성부터 한번 진지하게 해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모든 변화와 발전은 문제의 인식에서 출발한다는 저 철학적 원리를 다시금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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