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낯선 생애
우리의 낯선 생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1.1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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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민들레 공동체 대표
책을 읽다보면 가끔 단 한 줄, 단 몇 단어의 의미가 의식에 깊이 파고들 때가 있다. 최근 댄 알렌더가 쓴 ‘약함의 리더십’이라는 책을 읽다가 어느 페이지에서 ‘우리의 낯선 생애에 대해 솔직해질수록’이라는 구절이 그렇게 절실하게 와 닿았다. ‘우리의 낯선 생애’라니? 우리 자신의 삶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도 나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나 자신의 생이 그토록 나에게 낯설다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믿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을 깨는 지적 아닌가.

 우리가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 낯설다는 느낌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물론 공간, 물리적으로 새로운 곳에 왔기에 낯설다는 느낌을 받겠지만 아무리 새로운 곳이라도 오히려 친근감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 속에 숨겨져 왔던 갈망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유될 때 우리는 오히려 친숙함, 경이로움, 즐거움으로 그 낯선 곳이 변모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의 낯설음은 공간과 환경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와 함께 동행하는가의 여부이다. 비록 부부가 수십 년 평생을 살았다손 치더라도 낯설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황혼이혼이라는 고통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낯설음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낯설음은 우리를 불편케 하고 적응이 안 되어 자신의 둥지로 다시 숨어들면서 두려움과 두리번거림이 그의 얼굴에 새겨질 수 있다.

낯설음은 물론 일차적으로 공간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충격이다. 또한 동료와 이웃에게 마음을 열지 못할 때 낯설음은 일상이 된다. 그가 갖는 가족과 소수의 사람 이외에는 그의 기쁨과 슬픔과 좌절과 희망을 공유할 수 없고 삶의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대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잘못된 자기애 혹은 자기중심적 삶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욕망이 자기를 만족케 하고 채워주는 것일 거라 착각하지만 사실은 욕망이야말로 자신을 분리시켜버리고 자신을 낯설게 한다. 자기 존재에 대한 불성실과 훈련부족은 스스로를 낯선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오래 살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조차 답을 못 구한 채 죽어가며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낯선 채 죽어간다.

우리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변화에 충격을 받고 고통 받는다. 사실 사건과 환경의 변화는 그렇게 결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분노와 경악은 사실은 낯선 자기 자신의 본모습일 수도 있다. 이토록 익숙한 나 자신이 이토록 낯선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충격이다.

문제는 우리가 새로 발견한 이 낯설음을 극복할 대상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실수와 실패, 우리의 욕망과 희망,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숨김없이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가 하는 말이다. 자신의 낯설음에 대해 솔직해지고 피차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가 하는 말이다.

인생은 순례길이라 일컬어진다. 순례길은 수많은 군졸을 거느린 장군의 위세도 아니고 인기몰이를 하는 유명인의 대중적인 환호의 길도 아니다. 자신의 순례길에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불과 몇 되지 않는다. 순례길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하는 방향감각과 가능한 최소의 짐을 지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길을 잃어버렸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평화로움과 신뢰 가운데 확신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렸고 돈과 욕망이 대신해버렸다. 그것은 결국 우정보다 경쟁과 환멸을 일상화한 삶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방향도 모르는 길을 무겁게 욕망을 지고 외롭고 낯선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제 우리 주위에 순례길을 동행할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살펴보자. 그리고 우리의 길과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아픔과 열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해 보라. 우리의 낯선 생애가 동행의 즐거운 길이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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