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위천 명승수승대
거창 위천 명승수승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2.01 18: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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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수승대가 있는 위천면은 지금은 거창군에 속해있는 지역으로 조선 태종이전 까지는 이안(利安)으로 불렸다. 1401년 안음현으로 개칭하여 현재 함양의 3개면과 거창의 3개면을 합하여 안음현으로 내려오다 이조태종 43년(1767)에 지명을 안의(安義)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옛 안음에는 3동(洞)이 있어 이곳을 찾는 선비들이 많았다. 화림동(花林洞) 계곡은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거연정, 농월정 등 정자가 계곡 주변에 즐비하게 건립되어 있고 심진동 계곡은 용추사 계곡에서 안의로 내려오는 물줄기이고 원학동 계곡은 지금의 북상면과 위천면 일대에 흘러내리는 계곡이다. 수승대가 있는 위천면은 물과 바위 송림 정각등 볼거리가 많으며 주변에는 국가지정 문화재인 동계 정온선생의 생가와 황산 한옥마을 금원산 자연휴양림 등 볼거리가 많아 2008년 수승대를 국가지정 명승 제53호로 지정 그 품격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곳 수승대는 신라와 백제 사신이 이곳에 와서 서로 근심으로 송별하던 곳으로 수송이라는 명칭으로 내려 왔는데 1543년 퇴계 이황께서 사헌부에 있을 때 가뭄과 전염병이 극심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울 때 지역에 암행감사로 다녔고 그해 정월에 거창에 있는 장인 권질(奉事)이 공직에서 그만두고 거창으로 내려와 영송마을 앞 정자를 짓고 이곳에서 살았는데 퇴계께서 마을이름 영송을 영승이라 개명해 주고 정자 이름을 사락정(四樂 : 農, 桑, 漁, 樵)이라 하고 기문과 현판을 써 주었다. 이리하여 거창의 선비들과 사교중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얼마되지 않은 곳에 수송대라는 명지가 있으니 시간을 약정(約定)같이 그 곳에서 경관을 감상하기로 하였으나 갑자기 임금님으로 부터 빨리 입궐하라는 전갈(傳喝)이 있어 퇴계는 서울로 올라가셨다.
몇 일이 지난 후 편지로 갈천 임훈 선생에게 수송대를 수승대로 개명해 줄것을 편지로 적어 상세하게 설명하였고 수승대에 대한 시 한수를 적어 보냈다.

“寄題 搜勝臺(기제 수승대) 搜勝名新換(수승명신환) 逢春景益佳(봉춘경익가), 遠林花欲動(원림화욕동), 陰壑雪猶埋(음학설유매), 未寓搜尋眼(미우수심안), 惟增想像懷(유증상상회), 他年一樽酒(타년일준주), 巨筆寫丹崖(거필사단애)”
수승이라 대명을 새롭게 바꾸니 봄 경치 더욱 아름답구나. 먼숲 꽃 봉우리 터지려하고 음달골엔 눈이 아직 남아 있구나. 아름다운 수승대를 찾지 못하여 상상의 회포만 더하여가네
다른 해에 한 두루미 술로 큰 붓 들어 단애에 그리리라.


퇴계 선생으로 하여금 매우 적절하게 표현하여 금강 화양과 더불어 성대하게 빛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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