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中國社會)의 발전과정(Ⅰ)
중국사회(中國社會)의 발전과정(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2.01 18: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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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지난번에는 중국경제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시간에는 중국사회의 발전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선사시대에서 은상시대에 이르는 상고사회는 많은 변화를 보이던 시대이다.
첫째, 인류의 번식에 있어서 원시사회를 장식하는 혈족결혼(血族結婚)과 모계(母系)사회에서 이족(異族)결혼과 남권사회로 변천하던 과정이 있다. 동일 모계의 자녀가 제멋대로 교접하는 근친결혼이 횡행하던 사회였다.
따라서 여자는 아들을 낳는다는 구실로 사회 조직의 중심이 될 뿐 아니라 일정한 남편이 없이 야합하던 나머지 모계는 알되 아버지를 모르는 풍토(風土) 속에서 남자는 ‘집에서는 어머니를 따르고, 장가가면 아내를 따르고, 아내가 죽으면 딸을 따른다’는 역삼종지도를 지키게 되었다.

모권이 강렬하던 흔적으로 ‘시경(詩經)’에도 할머니를 칭송하던 장면은 있어도 할아버지를 칭송함은 보이지 않았거니와 최초의 성(姓)이 모두 여변(女邊) 글자인 요(姚)·강(姜)·길(姞)·희(姬)·운(妘)·위·영(嬴)이란 점에서 알 수 있다.

그 뒤 어렵축목 생활을 통하여 남자가 생활의 경제권을 잡고 상대방 씨족과의 융화를 위하여 남자에게 영솔의 권한이 이양되었는가 하면, 근친결혼이 우생(優生)에 불리함을 알았음인지 당우시대부터는 이족 혼인 제도를 실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로부터 가정이란 조직이 시작되었지만, 한편 이런 이족 혼인의 부작용으로 남자가 자기의 완력(腕力)을 빙자하여 약혼의 강탈 행위를 감행하기도 했다.

둘째, 원시적인 일종의 자연 및 동물에 대한 절대 신앙인 토템사회의 조직에서 부족을 이룬 씨족 사회로 발전했다.

원시인들의 자연계의 위력에 대한 경의사상과 신앙은 왕왕 어떤 자연이나 동물에게 일종의 신성불가침 사상을 품었다.

그래서 하나의 부족이 용(龍)으로 토템을 삼았다면 용에 대한 경외는 절대적이어서 그것을 잡거나 경홀히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어느 특정한 자연이나 동물로 자기 부족의 상징을 삼았던 것이다.

상은 시대 동기의 허리나 발에 해괴한 짐승의 모양을 새긴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동족끼리의 상징을 표시한 것이다.

이런 토템의 조직과 의식은 곧 이족 혼인제도와 씨족사회를 촉성케 하는 직접 동기로서 불가분한 것이다.
원래 씨족사회란 씨(氏)는 혈거시대에 굴을 지키는 무사(武士)를 말한다. 이는 곧 하나의 부족을 통솔하는 수령이다.

씨는 부족을 영솔하는 수령으로 부족을 보호하고 생산을 높여 외적과도 싸워야 하는 집단 사회가 되는 것이다.
셋째, 씨족의 집단은 맹주(盟主)를 추대하는 대부족(大部族)으로 발전했다. 씨족사회는 모계사회가 붕괴되고, 부계사회의 성립과 때를 같이 했고, 혼인제도의 정립과도 때를 같이 했다.

문명상 동기와 석기를 도구화하던 씨족사회는 지연(地緣)과 교통(交通) 관계로 서로 침략을 도발하거나, 서로 협조를 베푸는 집단부락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하나의 부락은 왕왕 하나의 씨족이었고, 하나의 국가로서 기구를 갖추게 되었다. 상고사에 나오는 염제신농씨·황제헌원·요·순이나 하우·상탕 등은 씨족집단의 수령으로써 한나라의 군주였다.

특히 하(夏)나 상(商)이란 국가는 이런 씨족집단이 확대되었다가 다시 맹주를 추대하여 일종의 동맹국가를 형성케 된 것이다.

여기서 중국의 씨족은 모계사회가 붕괴되고 부계사회로 옮기면서 생성된 하나의 작은 부족이며, 다시 씨족들은 맹주를 중심으로 큰 집단을 이루자 드디어 민족으로 발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부족과 부족 간에는 정복과 피정복이 연출되고, 이에 따라 귀족과 노예의 차별도 맹아되고, 제왕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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