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진주!
늦가을, 진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2.08 18:5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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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일년에 한번, 이맘때면 나는 진주로 간다. 진주가을문예 당선작에 대한 시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 내내 더욱 무섭게 푸르렀던 잎들은 이미 서둘러 땅으로 돌아가고 수양버들 잎같이 가볍고 얄미운 작은 잎들만이 노르스름하게 살랑대는 남강 강변이 보이는가 싶더니 버스가 멎었다. 와아, 진주다! 속으로 외치며 서둘러 내렸다. 시상식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올해는 특별히 ‘20주년 기념식’을 겸하기 때문에 마음은 더 긴장되고 설렌다.


식장에 들어서자 여태는 볼 수 없었던 화환이 그야말로 즐비했다. 진주가을문예를 만들어준 김장하 선생님의 마음에 맞춰 여태까지는 참으로 소박하고 검소하게 시상식이 진행된 것에 비하면 너무도 화려하고 그윽한 광경이었다. 검소하고 소박한 것도 좋았지만 그윽하고 화려한 것은 더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나는 꽃이나 잎을 보면 뭐라고 한마디쯤 감상을 전하지 않고는 지나치지 못한다. 시상식이 막 진행되고 있는데도 나는 꽃들을 일일이 보고 식장으로 들어갔다.

‘진주가을문예 20주년 기념식’이 벌써 20주년....... 그럼 내가 7회 당선자니까 가을문예에 소설로 당선한 지도 어언 13년이 지난 것이었다. 감회가 새로울 수 밖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이 뜨거워졌다. 도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두 원로가 축사를 해주셨다. 한 분은 문학이 우리 사회에 제 역할을 해줄 것을, 다른 한 분은 초심을 잃지 말고 언제나 젊게 살아가라고 당부해 주셨다.

드디어 존경하는 김장하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자그마한 체구를 조용조용 움직여 단상에 서셨다. 어느듯 20년이 지나서 문인들을 40여 명을 배출했다고 말씀하시며 잠시 말씀을 잇지 못했다. 얼굴이 붉으지시며 입을 다물고 서 계셨다. 지켜보던 우리는 박수로 선생님을 격려해드렸다. 더러더러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생님의 기념사는 그다지 길지는 않았지만 진심이 우러났다. 진심으로 배출된 문인들이 고맙다고, 거듭 고맙다고 끝까지 우리들에게 20년 공로를 안겨주셨다. 그 말씀이 깊은 진심인줄 알기에 나는 가슴이 무너지도록 감사했다.

나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닦으며 속으로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의 아름다운 공로입니다. 소박해서 더욱 위대한 선생님의 공로이십니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 고운 마음을 한시도 잊지않고 이어가겠다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그토록 진정이고 진심인 사랑이라면 일생을 다해 이어가도 모자란다고. 그토록, 고운 마음이라면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행복해질 거라고. 나도 덩달아 소박하지만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을 확신하며 울며 울며 다짐했다.

김장하 선생님을 먼발치에서 나마 보아온 지 십년이 넘었다. 뵈면 뵐수록 귀한 분이다. 겸허함, 배려, 후배양성, 기득권에 대한 곧은 저항, 올바른 마음과 행동....... 이런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일상생활에서 매순간 실행하고 계시는 분이다. 어떻게 저렇게 한결 같을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변함이 없으시다. 참으로 조석으로 변하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가 그나마 전폭되지 않고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우리 김장하 선생님 같은 분들이 요소요소에 살아계셔서일 것이다. 그 요소요소에 살아계신 분들 중에 단 한 분이라도 이렇게 곁에서 뵈며 살 수 있어서 진짜 나는 행복하다. 그 분을 닮으려고 애쓰며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나의 삶이 참으로 고맙고 소중하다. 이 또한 그 분들 덕분이다.

김장하 선생님 말씀에 이어 당선자 발표가 이어졌다. 먼저 시 당선자 발표가 있었다. 세상에!!! 시 당선자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란다. 나는 얼른 팜플릿을 펴서 우선 시를 읽었다.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 김미나. 달 거미 한 마리 지붕을 밟고 목련나무로 걸어와요/ 거미의 집을 허무는 게 아니에요/ 물웅덩이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중략)....... 할머니의 꽃상여를 짜듯/ 깊은 어둠을 지우려고 달의 이불을 짜고 있나봐요........(중략). 그리고 작가의 약력을 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맞았다. 예술고등학교이기는 했다. 아마도 문예창작과일 것이고 그보다 문예창작에 천재성을 가진 작가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좋은 선생님의 좋은 지도를 받았을 것이다. 하고 봐도 신통방통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3도 아니고 고2가 이렇게 시를 잘 쓸 수가 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시인을 직접 봐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통통하고 하얀 볼웃음을 짓는 시인은 너무도 귀여웠다.

이런! 시인에 대해 쓰다보니 정작 내 후배가 되는 소설 당선자에 대한 얘기를 못했다. 할 수 없다. 소설 당선자에 대해서는 다음에 우리 카페에다 소설평과 함께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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