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읽는 다는 것
좋은 글을 읽는 다는 것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2.02 18: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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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좋은 글을 읽는다는 건 참으로 귀한 일이다. 우선 좋은 글 대부분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남녀의 사랑, 아이들의 사랑, 뒤틀린 사랑, 새끼줄처럼 꼬인 사랑............. . 사랑은 그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인류의 인구들이 다 사랑을 하고 있지만 똑같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할 정도다. 그러니 예술 작품의 주요 주제다. 어제 사랑 이야기를 읽고 오늘 사랑 이야기를 또 읽어도 지겨울 정도로 지겹지 않다. 올해 들어 결의한 일 가운데 하나가 하루에 한 작품 읽기다. 일월이 다가도록 겨우 열 작품 정도를 읽었을까 말까 하지만 재밌다.


오늘 읽은 작품은 서지희의 단편소설 <마술피리>이다. 액자형 소설이고 이인칭 소설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 원해서 다시 만나는 장면을 앞뒤 액자로 해서 두 사람이 그 진정한 사랑에 이른 긴 여정을 안의 그림, 즉 내용으로 하는 소설이다. 제목 마술피리는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따온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소설의 큰 특징은 다른 예술 작품을 아주 적절하게 소품으로 또는 장치로 잘 활용하고 있는 점이다. <성취>라는 미술 작품도 잘 활용하고 있다. 화자의 방에 걸었던 액자로 나중에 첫 심리 상담자의 치유를 위해 상담실로 옮겨진다.

심리 상담사인 여자 주인공이 어느 날 미치도록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동차로 달려가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료가 강추한 카페 <마술피리>를 방문한다. 오페라 마술피리에 대한 추억이 있는 그녀는 긴가민가 하면서 열려있는 출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술피리의 음악이 흐르고 금방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지만 사람은 없다. 이에 의아한 그녀는 실내를 둘러보며 그림 <성취>를 마주한다. 성취는 그녀가 외국을 여행하며 보게 된 그림으로 두 남녀가 포옹을 하고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그 포옹하는 두 사람을 포함해서 그림 전부를 포옹하는, 세상 전부를 안아주는 느낌을 주는 뒤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녀는 그 그림 모형을 사서 돌아와서 자신의 벽에 걸었던 것이다.

마술피리 만큼이나 <성취>에 대한 추억도 간직하고 있는 그녀는 카페의 주인이 궁금해진다. 이에 독자도 카페의 주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작품을 몰입해서 읽게 된다. 주인공 여자가 자신의 추억을 상기하느라 카페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듯이 독자는 그 추억을 듣느라고 조금이라도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아주 조금씩 보여주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성마르기조차 하다. 독자가 궁금해 하는 걸 조금씩 조금씩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긴장감과 읽고 싶은 욕심의 줄을 팽팽하게 한다.

소설적 논리가 소설적으로 잘 구축되어 있다. 여자 주인공이 남주인공 류를 사랑한다는 것과 류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독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작가는 그 사실을 가장 경제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너무도 소설적 화법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그런 논리들을 놓치고 만다. 그렇지만 분명 여주인공은 류를 사랑한다는 그 사실은 아주 정확하게 구축한다.

류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오늘은 여러모로 위로가 필요한 날이다’라고 묘사해 놓았다. 실은 사랑하는 사람의 상대가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날의 그 얄궂은 심리묘사를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섬세한 표현인가. 류는 류대로 여태 상처 속에서 고통의 날들이 아예 습관이 되어 자신의 사랑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시 여주인공에게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통해 사랑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묘사들이 상처를 깊이 받았던 두 사랑의 주체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너무나 오랜 세월 상처 속에서 견뎌온 그들은 고백을 하지 못해 사랑하는 상대와 또 다시 아픈 이별을 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소탈하고 정직하게 내보이는 일을 하는데 익숙지 않던 것이다. 마치 갓난아이들의 여리디 여린 마음처럼 스스로도 구체화하지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성취’가 무엇인지 끈질기게 묻고 있다. 진정한 성취는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독자를 끝까지 설득한다. 우리가 세상일에서 아무리 고급한 성공을 했다고 해도 거기에 사랑이 없다면, 그 허무가 끔찍하다. 반면에 어떤 일에서 실패를 했다고 해도 괜찮다고, 다시 시작하자고 격려해주는 사랑이 곁에 있다면 실패는 바로 희망으로 변신한다. 비록 그 사랑이 다시 고통을 가져다줄지라도 그 사랑만이 희망이라고 작품은 말하고 있다. 곧 그 사랑의 성취는 숙명적으로 희망을 불러온다고도 강변한다.

이래서 좋은 작품은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도 더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투지를 불러오는 것이 좋은 글의 특징이다. 나도 좋은 소설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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