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을 안 하면 안 되는 사회
욕을 안 하면 안 되는 사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6.0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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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 엄마, 요즘 애들은 욕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여요. 반에서 욕 안 하는 애가 없을 정도라니까요. 욕 안 하게 생긴 애들도 은근히 욕을 하는데 그런 애들이 욕을 더 잘해요.”

우리나라 초·중·고교생 가운데 욕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학생은 20명 가운데 1명에 불과하다는 뉴스를 듣고 밥숟가락을 든 채 멍하게 앉아있으니 중1인 딸아이가 내 팔을 잡아 흔들며 위로랍시고 한 말이 이랬다.

지난해 체육대회 연습 도중에 친한 친구로부터 “ 야, ○○년아” 라는 소리를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아 이후 교우관계는 물론 성적과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아직까지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딸아이의 말이라서 이건 내게 위로가 아니라 비수였다.

올해 1월,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의 73%가 매일 욕설을 사용하고, 50% 이상은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욕을 한다고 발표하며, 이 문제를 내년까지시행되는 청소년기본계획의 주요 과제로 포함시켜 집중적으로 시행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에 수요일을 ‘패밀리데이’로 정하는가 하면 익명성이란 이유로 청소년 언어사용에 부정적인 면이 많은 각종 매체들의 비속어 표현을 강력히 규제하는 등 여러 방안들을 내놨다.

하지만 6개월 후인 엊그제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전국의 학생 126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욕설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응답은 전체의 5.4%인 68명으로 나타났다. 반면 매일 한 번 이상 욕설을 한다는 응답은 95%, 욕설을 하는 대상은 친구가 70%로였지만, 아무한테나 욕설을 한다는 대답도 5.2%로였다. 더욱이 이들 중 80%가 초등학교 때 욕을 배웠다고 대답을 했다니 섬뜩하다. 또 이 욕설을 배우는 경로가 주로 친구와 인터넷 영화 순이었으며, 욕설 문화의 원인이 동질감 확인과 친근감 강화 등이라니 할 말이 없다.

이처럼 우리 청소년들의 욕설과 폭언이 도를 넘고 있다. 이제 욕이 아니면 서로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다. 왜 한창 고운 말 바른 말을 하며 긍정적인 가치관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이들은 이토록 욕으로 일상어로 주고받는 것일까.

이는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대화의 반 이상이 욕설과 비속어, 은어로 이뤄져 있다.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누나가 휴대폰에다 멀쩡한 자기 동생들을 ‘장애1급’, ‘완전병신’이라고 입력시켜 놓은 것을 봤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이는 언어순화 캠페인이나 방송. 통신. 영상 매체들에 대해 욕설과 언어폭력에 대한 심의기준 강화나 청소년용 표준화법 개발·보급 등의 제도개선을 추진한다고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현장교사들은 학생들의 욕설문화가 이토록 일상화된 가장 큰 원인으로 인터넷의 등장을 꼽는다.

그러나 이는 초기진단이 잘못된 것이다. 실은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부모들의 폭언과 비속어 사용이 인터넷보다 더 큰 영향을 아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미치고 있다. 아이들에 따르면 집에서는 아빠가 운전 할 때 학교서는 몇 몇 교사들이 수업 중에 육두문자 욕설을 그대로 내뱉는데서 배운다고 한다.

한편, 욕이 없으면 아예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도, 공부만 잘하면 모범생으로 입학사정관이나 심층면접에서는 가산점을 받는 반면 욕을 할줄 모르는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현실이 문제다. 학교에서 누가 더 욕을 잘하는가에 따라 대인관계의 수준까지도 결정된다고 한다면 청소년들의 입이 이리 거칠어진 것은 일단 교육적 책임이 크다.

아이들은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친구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니 엄밀하게 보면 친구는 없고 주위에 다 경쟁의 대상자만 있는 것이니까. 친구가 더 이상 동료가 될 수 없는 교육제도 아래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표현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개꿈이다. 게다가 당장 ‘진단평가’라는 절대적인 ‘학력’ 가치 앞에서 어느 학교가 ‘욕설’을 아이의 평가항목에다 넣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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