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는 반성하고 다양성은 인정하자
실수는 반성하고 다양성은 인정하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3.07 19:0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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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프랑스에 유학을 간 한국 학생이 어느 날 밤늦게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열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학생은 급하게 자동개표기 단말기에 티켓을 통과시키고 승차했다. 종점에서 내린 그에게 역무원은 티켓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티켓에는 단말기를 통과한 기록이 없었다. 역무원은 무임승차를 했다며 150프랑의 벌금을 내라고 했다. 유학생은 억울해서 소리를 지르다가 개표기가 분명히 고장이라고 주장했다. 역무원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표기 고장은 역에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당신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봐요. 개표기 네 개중 나머지 세 개는 정상이었을 테니까. 탈 때는 당신의 실수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작은 실수의 대가로 벌금을 내야만 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찾아내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일례로 식사 시간에 아이와 장난을 치던 강아지가 접시를 깨면 아이는 강아지가 잘못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럴 때 아버지는 아이에게 방으로 들어가 자신이 잘못을 했는지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몇 분 후 아이는 식사할 때 강아지와 논 자신도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네가 책임을 인정했으니 식탁을 치우고, 용돈으로 깨진 접시 값을 내라.”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싸움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들에게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습관이 민족성처럼 자리 잡고 있다. 자기반성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윤활유와 같은 작용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소홀함으로 일을 망치는 실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구소련이 물자 부족으로 허덕일 때의 일이다. 소련 사람들은 모든 물건을 줄을 서야만 겨우 살 수 있었다. 한 소련인이 외국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해서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청소를 하던 그는 하나밖에 없는 빗자루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던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 외국 친구들 몇 명이 도착했다. 친구가 우는 모습에 당황한 그들은 사정을 듣자 위로를 했다.

부유한 일본인은 “빗자루 하나가 몇 푼이나 한다고 그래. 다시 하나 사면되는데 뭘 그렇게 슬퍼하는 거지?”라고 했다.

법률을 만능으로 믿는 미국인은 냉정하게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조악한 빗자루를 생산한 회사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면 돼. 패소해도 너는 소송비용을 낼 필요가 없어!”

낭만적인 프랑스 친구는 엉뚱한 논리로 위로를 했다. “나는 자네가 빗자루를 그냥 부러뜨릴 정도로 힘이 좋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워. 나 같은 사나이의 부러움을 사는 판에 울기는 뭘 울어?”

실용적인 독일 친구도 한마디 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같이 연구하면 빗자루를 원래처럼 붙여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미신을 잘 믿는 타이완 친구도 거들었다. “안심해! 빗자루가 부러진 것은 재수 없는 일이 생길 거라는 징조가 아니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소련인이 울면서 푸념을 했다. “나는 너희들이 말한 이유들 때문에 운게 아니야. 나는 내일 가게 앞에 줄을 서서 한나절을 기다려야만 빗자루를 살 수 있어. 그러니 너희들이랑 같이 놀러 갈 수가 없단 말이야!”

중국의 시인이며 작가이며 인민일보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장쓰안(張世安)은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여섯 가지 실수는 첫째 쉽게 사람을 믿는다. 둘째 안하무인의 태도. 셋째 세 살 버릇은 고치기 힘들다. 넷째 지나친 욕심. 다섯째 신용카드로 인한 채무. 여섯째 과도한 표현. 이라고 했다.

개에게 물렸다고 당신이 개를 물 수는 없지 않은가. 개에게 물리면 물린 사람도 실수가 있지 않은가. 세상에는 욕만 먹는 사람도, 칭찬만 받는 사람도 없다. 당신이 말을 많이 할 때, 적게 할 때, 침묵할 때, 이 모든 경우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남들의 비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치아는 단단하고 혀는 부드럽지만, 먼저 썩는 것은 치아이다. 혀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서서히 썩는다. 부드러움의 생명력은 길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는 데 맛을 들이면 자기를 반성할 시간이 없으므로 부실한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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