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의 승리
이세돌 9단의 승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3.15 18: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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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드디어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겼다. 너무 기쁘다. 너무 너무 즐겁다. 인공지능을 이긴 것도 그렇지만 이세돌 9단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좋다. 원래 생김생김이 귀염성이 있기도 하고 해맑기도 해서 더 웃는 모습이 좋다. 세 번의 대국 불계패에서 상심한 그의 모습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뭔가를 골돌히 생각하는 얼굴이나 패배의 고통을 견디는 표정은 내 마음까지 슬프게 했다. 여리디 여린 몸피가 금방 쓰러질 듯 안타까웠다. 그 힘들어하던 표정이 활짝 웃으니 나도 너무 기쁘고 마냥 즐겁다. 그가 실제로 순한지 안 순한지 나는 모른다. 근데 그가 고통스러워하고 고뇌에 차 있다가 저렇게 해맑게 웃은 모습을 보자 나는 그가 착한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인터넷 뉴스에서 듣고 전해준 딸의 말로는 그가 엄청난 딸바보란다. 엄청난 딸바보면 엄청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고 더 확신해버렸다.


이세돌 9단의 얼굴과 몸피는 참으로 여리게 보인다. 저렇게 여린 몸 어디에서 그런 뚝심이 나오는지, 저토록 해맑은 얼굴 표정을 가진 저 두뇌 어디 쯤에 그런 위대하고 명석한 이성적 사고력이 자리하고 있는지, 그야말로 불가사의다.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오목이라면 모를까, 바둑이라면 아직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른다. 가로 19칸 세로 19칸으로 합해서 361칸을 가진 바둑판과 흑돌과 백돌이 싸우는 게임이라는 정도 안다. 덧붙이자면 바둑이라는 것이 이길 수 있는 만가지 방법과 질 수 있는 만가지 방법을 가진 매우 매우 복잡한 게임이라는 것도 아는 정도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바둑을 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자연 바둑을 두는 모습을 잘 볼 수 없었지만 간혹 부잣집 사람들이 솔밭 그늘에 앉아 두는 걸 구경하곤 했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실제로 동네의 엘리트이기도 했다. 그런 어린 날에 어쩌다 바둑판의 견고함을 보면 질리기부터 했다. 반면에 까맣고 하얀 바둑알을 보면 왠지 다정함이 느껴져서 자꾸 만지곤 했다. 바둑알을 손안에 쥐고 다시 놓으면 촤르륵, 소리가 또한 다정하게 들렸다. 그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도 좋았다. 그러나저러나 바둑은 내게서 먼 일이었다.

그런데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세돌 9단을 보면서 마구 걱정이 되었다. 바둑이 무엇인데 저렇게 순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까, 게다가 컴퓨터와 사람을 대결시켜 저러는지, 저 패배감을 어쩔 것인가. 저 딸바보가 딸에게 패배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 진짜 별별 걱정이 다 됐다. 그러다 오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 기쁘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순한 표정일 수 있는지, 웃는 모습을 보는데도 마음이 외려 아플 지경이었다.

첫번째 대국에서 불계패 당한 이세돌 9단은 힘겹게 ‘의미 있는 대국이었다’라고 말했다. 뭔가를 더 배웠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그의 말을 신문에서 보면서 그의 진지함을 보았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뭔가를 배워가는 건 대단한 뚝심이다. 들어본 바로는 컴퓨터도 그냥 컴퓨터가 아니라 괴물이란다. 그 알파곤지 뭔지 하는 괴물은 세계의 내로라는 천재들이 모여서 만든 최고 사양의 서버용 컴퓨터 1200대로 이뤄진 상상을 초월하는 인공지능이란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집어삼키고 싶은 구글이 엄청난 정보력을 확보하고 동원해서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세상을 어떻게 집어삼키겠다는 건지 의아하고 짜증이 나는 건 둘째 문제고 그걸 가지고 사람과 대결시켜서 어쩌자는 건지. 걱정을 넘어 막막하고 착잡했다.

두번째 대국에서는 ‘어떻게 지는 지도 모르고 졌다’고 더 힘겨워했다. 정직한 소회다. 참으로 천진난만해서 오히려 비장하게 보이는 정직함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는 기색은 없었다. 마치 5국을 다 질지라도 기죽지 않을 천진난만이었다. 마치 꼭 치뤄내야 하는 운명을 정면대결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 영웅 같았다. 그리고 그 정면대결에서 죽어가면서도 한 수라도 더 배우고야 말겠다는 결기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세번째 대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은 또 말했다. ‘이번 대국의 패배는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 이번 대국에서 알파고는 신의 경지는 아니지만 인간과 다른 감각이 분명히 있고 우월함도 보였다.’ 이 얼마나 치열하고 겸허한 소감인가. 기계 따위가 1200대가 아니라 1만 2천 대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기계 따위에게 질 수 없다는, 져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그토록 겸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감정과 낭만이 없지만 기계다운 기계만의 감각과 우월함도 인정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 와중에 저 가공할 기계의 속성을 읽어내다니, 그는 위대하다.

네번째 대국! 드디어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 9단은 말했다.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1승!’ 그리고 온 세상이 환호했다. 이것은 이세돌의 승리이자 인간 모두의 승리였던 것이다. 들리는 바로는 대국장에 모인 수백 명의 기자들도 기뻐서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했다고 한다. 그렇고말고! 이세돌 9단은 우리 모두에게 승리를 주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세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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