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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강신웅 칼럼
중국사회(中國社會)의 형태(Ⅲ)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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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0  18: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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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중국사회의 형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묘수(廟數)제도는 신분에 따라 사당의 규모를 달리함이니 ‘예기(禮記)’왕제기(王制記)에 기록된 주(周)대의 묘제(廟制)는 천자(天子)가 삼소(三昭)와 삼목(三穆)과 태조묘를 합해 7묘로 하고, 제후가 이소(二昭)와 이목과 태조묘를 합해 5묘로 하고, 대부(大夫)가 일소와 일목과 태조묘를 합해 3묘로 하고, 사(士)인 계급은 1묘로 하고, 서민은 안방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규제되어 있다.

한편 묘당에 신위를 배열하는데도 각각 규정이 있다. 천자의 7묘를 보면 시조인 태조(太祖)묘를 중앙에, 그리고 좌측으로 태조 쪽에서 조(祧)묘, 현고(顯考)묘, 왕고(王考)묘 순으로 배열하고, 우측으로 태조 쪽에서 조묘 · 황고(皇考)묘 · 고(考)묘 순으로 배열한다.

이는 신분과 친소(親疎)를 가리는 유교의 원칙적인 제도로서 지금 비록 전래하지는 않지만 묘수제도의 근본정신인 계급의식과 ‘가까운 데서 멀리 가는’유교 관념은 아직도 잔재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불혼(同姓不婚)의 제도는 인륜관계를 두텁게 하고 패륜(悖倫)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실시했던바, 원래는 엄격한 종법사회에서 종통 관념을 위한 의미가 더 엄중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동성불혼은 생리상 생식의 효과가 적었던 것도 일찍이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성불혼은 이같이 종법사회에서 종족을 지키려는 관념 외에도 윤리를 위한 제재였는데 오늘까지 전래되고 있다. 우생(優生)을 위한 의의는 과거에는 사실상 크지 못했다고 본다. 그것은 많은 중국 선비가 외매(外妹)나 고매(姑妹)와 통혼한 일이 있었음이 반증해 주고 있다.

중국 사회를 내적으로 견제하는 예(禮)는 제도나 법률에 앞서 있고, 사실상 제도나 법률을 어길지언정 예를 더욱 고집하는 중례(重禮)사회다.

공자는 인간의 수양에 있어 예로서 그를 정립한다 했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사회에 생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예는 하나의 생활의 규범이었다. 그것이 발생할 때에는 결코 인간을 구속하거나 허위로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안으로는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는 ‘분수’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함이요, 밖으로는 인간관계에 있어 화해(和諧)를 도모함이니, 예가 언제나 음악(音樂)과 나란히 한 것은 생활의 순화(醇化)를 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원의 의의를 지닌 예는 세 가지 성격을 띠고 중국사회에 공헌해 왔다.

최초는 종교적이었다. 귀신 ‘신(神) 변’에다 조두(俎豆)의 제기(祭器)를 합한 ‘예(禮)’자는 신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을 표시했다. 주공(周公)이 섭정한 6년째 주례(周禮)와 동시에 제작되어 서한(西漢) 초에 전수되었던 의식(儀式)의 책인 <의례(儀禮)> 17편의 내용을 보면, 현실적인 생활의 규범보다 천신(天神)과 조신(祖神)에 대한 제사나 상례(喪禮)가 많은 것이다.

다음에는 주공의 제례(制禮)를 계기로 정치성이 농후하여졌다. 천자가 천지 명산대천에 제사를 모시는 것은 일반 백성을 대표해서 자연에게 경의를 드리는 것이며, 군소 부락에서 성황(城隍)묘를 지어 제사드리는 것은 향토를 보호하려는 것이요, 또 복덕사(福德祠)를 지어 토지신(土地神)에게 제사드리는 것은 우리를 길러주고 있는 토지에게 경의를 표시하는 것이다.

공자가 예악(禮樂)을 제창함에 이르러는 정치성이나 종교성이 배제된 사회생활의 방식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예가 생활 속에 파고든 것은 공자 이후부터다. 공자는 신(神)의 존재를 회의하면서 현실을 중시한지라 다만 제사라는 고유 풍속을 답습하면서 인류에게 인간의 푀후에 대한 각성과 현실에 대한 경건(敬虔)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제사를 필요시했으나, 제사의 방법으로 제사를 지낼 대에는 신이 있는 것으로 대하라고 했다.

이같이 제사는 현실을 위한 예식이었지 미신적(迷信的)인 것은 아니었다. 예의 의식 중에 가장 엄숙한 제례(祭禮)가 이럴진대 일반적인 예의는 생활의 현실적인 도덕에 기준했던 것이다. 이런 도덕을 사회에 수립하고 시행하는 조직은 어디까지나 가족사회의 ‘종법(宗法)’에 기초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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