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지켜온 역사 산물, 성곽의 보존과 활용(7)
우리 삶 지켜온 역사 산물, 성곽의 보존과 활용(7)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4.06 19:0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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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교/진주문화원 향토사실장·문화재청 무형유산지기

 
지난 시간에 이어 남해안 동부 유역의 성곽으로 창원지역을 소개한다.

창원 합포성지는 배극렴이 왜구를 막을 목적으로 고려 우왕 4년(1378)에 돌로 쌓은 경상우도 병영성이다. 성에는 4대문을 설치했고, 의만창·회영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성 밖에는 주위에 연못을 파고 다리를 설치하였다. 성의 외벽은 큰 돌을 사용하여 견고함을 느끼게 하며, 하단의 기초석은 밖으로 내어 쌓았다. 내벽은 계단모양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게 쌓았는데 이것은 조선 전기 축성법의 특징이다.

웅천안골리성은 일제지정 문화재 재평가와 관련, 등급 조정키로 함에 따라 1997.1.1.일자 사적 해제 후 지방지정문화재로 지정 권고되었다. 진해시 안골동에 있는 웅천안골리왜성은 동망산 정상 위에 만들어졌다. 산의 지형을 3등분으로 나누어 부분적으로 정상을 평평하게 깎은 뒤 본성, 제1외곽, 제2외곽을 나누어서 따로 돌로 쌓고, 외곽으로 각 부분을 연결하였는데, 외곽의 일부는 흙으로 쌓았다. 성의 남쪽과 서쪽은 만을 끼고 있는데, 이는 바닷길을 이용하기 쉽도록 해변까지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마산일본성은 보존가치가 없으므로 1969.8.1.일자 해제 조치되었다.

여섯째, 낙동강 중류 유역의 성곽으로 함안, 창녕, 밀양지역이 포함된다.

성산산성은 함안의 서북쪽에 있는 성산에 둘레 약 1.4㎞에 걸쳐 돌로 쌓은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조남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안의 형태는 약간 오목하게 생긴 평탄한 지형인데, 대부분 논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동쪽 제일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이 성 밖에 작은 계곡을 만들고 있다. 이 부근에 문터가 있고 서쪽 성벽에도 문터로 보이는 곳이 남아 있다.

화왕산성은 창녕 읍내의 동쪽 화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이며 가야의 산성으로 생각된다. 조선 세종 때 성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중요성이 인식되어 곽재우가 의병 근거지로 왜병의 진출을 막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한두 차례 수리가 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목마산성은 창녕 동쪽에 있는 화왕산의 북쪽 봉우리로부터 서쪽으로 뻗은 야산의 골짜기를 에워싼 산성이다. 임진왜란과도 관계가 깊은 산성으로, 의병장 곽재우가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산성터를 수축하였다. 둘레 1.9㎞로 산성으로서는 규모가 매우 큰 편이고 비교적 석축의 상태가 잘 남아있는 편이다. 삼국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산성의 형태이며, 성의 앞면이 계곡 입구를 향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수비를 위한 산성으로 보인다.

추화산성은 밀양시 해발 243m의 주화산 산마루에 있는 돌로 쌓은 성으로, 밀양읍성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 지점에 있다. 추화산성은 신라가 가야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삼국시대 초기의 산성터로 추정된다. 성안에서 기와조각, 토기조각, 분청자기, 백자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성은 처음에는 읍성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다음 시간에는 양산, 김해지역이 이에 속한 낙동강 하류 지역의 성곽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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