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無의 황매산에 안긴 영암사지로 떠나보자
3無의 황매산에 안긴 영암사지로 떠나보자
  • 합천/김상준기자
  • 승인 2016.04.14 19:43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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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비밀 간직한 채 사라진 아름다운 폐사지
▲ 사진제공/한국의 산하

“경상도에는 암석 화산(바퀴 봉우리가 불꽃처럼 솟은 모양의 산)이 전혀 없다. 오로지 합천 가야산에만 바위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진다. 이들 봉우리는 불꽃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 지극히 높고 수려하다”라는 이중환이 쓴 지리서 ‘택리지’에서도 언급되었듯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산들이 많다. 이 수려한 명산들에는 굽이굽이 우리 역사 속 찬란한 자취들도 함께 서려 있다.


가야산 봉우리는 1200년 역사의 천년고찰이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 외 국보 셋과 여러 보물, 지방유형문화재까지 보유한 해인사를 품고 있는가 하면, 영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황매산은 역사적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아름다운 폐사지인 영암사지도 있다.

◆효의 산, 3무(無)의 산 황매산
산 이름만 보면 누런 매실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황매산엔 매화는 없다. 황매산의 황(黃)은 부(富)를, 매(梅)는 귀(貴)를 의미하여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지난 1983년 합천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황매산은 합천8경 중 여덟번째 비경으로 합천호의 푸른 물속에 산자락을 담그고 있는 형상이 마치 호수에 떠있는 매화와 같다고 해서 수중매라 불리기도 한다. 이른 아침이면 합천호의 물안개와 부딪치며 산안개와 몸을 섞는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 영암사지 쌍사자석등과 아치형 돌계단(합천군 홈페이지)
지난 1980년대 초 목장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고 불태운 자리에 생명력이 강한 철쭉과 억새가 가장 먼저 자라서 군락을 이루면서 황매산은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의 명소가 됐다. 황매산은 매혹적인 진분홍의 철쭉이 만개하는 봄도 아름답지만, 낮은 구릉들이 푸르른 초목으로 뒤덮이는 한 여름이나 억새풀이 흐트러지는 가을, 눈꽃이 피어나는 겨울의 모습 그 어느 것도 놓치긴 아쉽다. 여느 산의 정상의 모습과는 달리 시야가 딱 트여 있어 그 어떤 계절의 모습도 그림처럼 다가온다.

황매산 정상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명당자리로 알려진 무지개터의 막힘없이 펼쳐지는 전경이 세속의 시름을 잊게 하는 성지라고 불린다. 우뚝 솟은 3개의 봉우리는 삼현(三賢)이 탄생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고려시대 호국선사 무학대사, 조선중기 대유학자 남명 조식이 그들이고 한명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전설이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무학대사가 황매산에서 수도할 때 뒷바라지를 위해 산을 오르내리는 어머니가 칡덩굴에 넘어지고 땅가시에 긁히고, 뱀에 놀라는 사실을 알고 지극 정성으로 100일간 기도를 드려 지금까지 뱀, 땅가시, 칡덩굴이 자라지 않는 3無의 산으로 불리고 있다. 무학대사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의 실천과 사랑이 천년의 시공을 넘어 전설로 이어온다.

잘 정비된 도로 덕분에 황매산 정상에 가까운 오토캠핑장까지 차가 오를 수 있어 힘겨운 등산을 해야 하는 부담감도 없다. 오토캠핑장에서 시작하는 황매산 등산로는 초반 약간의 경사를 지나면 등고가 낮은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여유가 된다면 모산재에 들러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력을 충전하자. 모산재는 황매산 자락의 하나로 억센 사내의 힘줄 같은 암봉으로 이뤄진 산으로 풍수학자들에 따르면 모산재는 해인사 가야산에서 비롯된 산줄기가 황매산을 지나 거침없이 뻗으면서 그 기백이 모인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오르면 오를수록 기운이 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하니, 확인해 볼 일이다. 인근에는 조선천하의 명당자리라는 무지개터, 순결한 사람을 가려낸다는 전설을 가진 순결바위, 비밀스러운 영암사지 절터 등이 있어 그 즐거움을 한층 더한다.

▲ 합천 영암사지 귀부(합천군 홈페이지)
◆비움의 미학 영암사지
통일신라시대 지어졌다는 영암사는 이름만 전해지고 유래와 역사조차 가뭇없이 사라진 절터로 남았다. 흔적만 남기고 오간데 없이 사라진 절터에는 그 옛날 영화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보물 3점이 남아있다.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6권의 표지모델이기도 하다. 석등을 받치고 서 있는 두 사자 사이의 공간을 미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산 쪽에서 보면 그 사이로 삼층석탑(보물 제480호)이 보이고 반대편에서 보면 황매산 모산재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영암사지 터는 여백의 아름다움과 함께 과거의 값진 흔적들도 지녔다. 마을 사람들은 마음을 모아 갖은 수고로 귀한 유물들을 굳건히 지켜냈다. 1933년 일본인들이 쌍사자석등을 훔쳐 가려할 때도 힘을 모아 싸웠고, 1959년에는 면사무소에 보관하고 있던 그 석등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흙에 묻힌 금당 터도 땅 위로 올려놓았다.

절터에 서서 눈을 감으면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과거와의 대화도 가능하다. 1000년 전 흥성거림과 우람한 가람, 아름답고 화려한 석탑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이 이곳이 아닐까? 비어있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가득참을 느끼는 까닭이다.

전국 최고의 폐사지로 꼽히는 영암사지는 황매산의 신령한 힘과 모산재의 기백이 분출하는 곳으로 무너진 옛가람이긴 하지만 어느 한 곳 빈틈이 없는 ‘텅빈 충만’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다. 영암사지에 가면 헛헛한 마음까지 꽉 찬다. 합천/김상준기자

▲ 사진제공/한국의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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