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杜鵑花)
진달래(杜鵑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5.03 19:0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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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영산홍과 철쭉은 진달래과로 많은 종을 개발하여 시중에 관상과 조경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영산홍을 두견화라하며 전국 볕바른 산기슭에 분홍색 진달래꽃이 먼저 피고 이어서 철쭉이 핀다.


진달래는 꽃샘추위에도 새잎보다 먼저 꽃망울을 내밀어 큼직한 꽃 흐드러지게 피우는 식물로 겨우내 황량했던 산과들이 화사한 봄빛을 업고 생기를 되찾는다. 예로부터 진달래는 개나리와 함께 봄소식을 전하는 꽃나무로 여겨졌다. 진달래는 오랜세월 우리민족의 삶과 함께 같이 새콤달콤한 특유의 맛을 가져 떡을 빚거나 부침개를 지져서 봄철 입맛을 돋우는 간식으로 즐겨먹었고 고운 빛깔과 향기가 그윽하여 술을 담아 두견주로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진달래는 시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였고 그 대표적인 시는 김소월(1902)이 평북곽산에서 출생 본명은 김정식으로 23세에 유일한 시 진달래꽃을 발표 당시 우리민족에게 익숙한 말과 리듬을 사용 민족의 전통적 정서를 잘 표현했다. 진달래꽃은 전국민이 애창하는 대표적인 시이다. 사랑하는 임을 보내는 심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서정시이다.

김정식은 1923년에 동경대에 입학했으나 9월에 관동대지진으로 중퇴하고 귀국했으나 가세가 기울고 사업이 실패하는 등 심한 염세증에 빠져 1934년 아편을 먹고 자살했다.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등 8제를 발표했다. 사랑하는 님과 이별하는 여인의 한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가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이별의 시가 되겠다.

가장된 속에 숨겨진 크나큰 슬픔과 한이 절묘하게 베어나는 것 즉 애이불비(哀而不悲=아픔은 있어도 슬픔은 없다)가 이 시의 묘미이다. 진달래는 자연상태의 숲이 산불이나 벌목 등으로 파괴된 곳에 제일 먼저 천이(遷移)되어 뿌리를 내리고 집단생육 하는 식물이다. 헐벗은 산을 푸르게 가꾸는 고마운 식물이다. 진달래는 척박한 땅에 억척스레 강하여 뿌리를 내리고 이웃 식물과 다투지 않고 긴 세월을 거뜬하게 살아온 식물이다. 혹독했던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겪고도 끈질기게 산업과 문화를 발전시킨 한국인과 닮아 있다. 그래서 진달래꽃은 문학속에서 우리민족의 끈질김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상징하는 꽃나무이다. 1926년 아동문학가 이원수 시인이 작시한 고향의 봄에도 진달래가 고향을 그리는 향수의 상징으로 등장 헐벗은 강산을 아름답게 가꾸는 꽃나무로 조선풍미(風味)의 진달래를 남겼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으로 불리고 맛이 써고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는 철쭉은 ‘개꽃’이라 불린다. 진달래는 4월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지만 철쭉은 오뉴월에 잎을 낸뒤 그 다음 꽃을 피운다. 고산이나 저산지대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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