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봄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5.10 18:44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봄이라고 했지만 저기 봄이 간다고 외치고 싶다. 봄은 왜 이토록 애틋한지, 차라리 슬픈 게 백번 맞다. 차라리 잔인한 게 딱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봄은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말이 아무리 흔하디 흔하다고 해도 너무 너무 아름답다는 말밖에 달리 새롭게 표현할 말이 없다. 하얀목련이 숭고한 정신이라는 꽃말처럼 숭고하게 피어 이내 비장하게 꽃이파리를 턱턱 떨구었다. 자목련이 뒤를 이어 위대하고 우아하게 피었다. 벗꽃이 뒤질세라 어느새 화알짝 피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봄눈이 되어 하늘하늘 꽃눈으로 내리더니 이네 녹색의 잎새들이 일어났다.화단에 심은 두릅이 페기를 기다려 입도 봄치레를 했다. 연한 원추리 잎을 뜯어 데쳐서 된장에 묻혀 먹으면 내 몸에도 새봄 기운이 감돈다. 옥잠화 나물도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무치면 우리 식구들이 다 좋아한다. 봄 이야기를 하자니 끝도 없다.


이런 봄에 나는 차라리 딴 이야기를 하련다. 이 위대한 봄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 이른바 오늘날까지 나를 있게 한 어떤 것들을 상기해보려고 한다. 은혜를 알면 사람이고 은혜를 모르면 축생이라 했다. 일일이 찾아서 은혜를 갚지는 못해도 잊지는 말아야겠다는 취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나를 있게 한 사람들은 부모님이다. 그러나 부모님이야 천륜이라 해서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식에게 떡국은 먹이고 싶고 쌀은 밥할 쌀도 없으니 떡국은 동네 잔치집에서 얻어다 먹인 어머니 이야기를 하자면 또한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혈연은 언급을 제외하고 혈연 외적인 인연으로 나를 살려준 인연들을 생각나는 대로 기억해보자. 이 또한 지나가다 내가 배가 고플 것이 걱정되어 풀빵 하나를 건넨 자잘한 신세까지 상기하자면 그야말로 필설로는 다하지 못할 것이다. 워낙에 빈농 출신이라 남에게 신세지기로만 점철된 삶이라니.

내가 자취를 한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중반까지 밀도 있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자기의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내가 밥을 먹지 못하고 배가 고파 잠을 설칠 것이라고 여겨지면 아무리 밤이 깊어도 내 자취방으로 달려와서 뭐라도 먹여놓고 가는 친구였다. 자취를 하다보면 뭐나 다 모자란다. 그걸 아는 이 친구는 김치에서 고추가루나 깨소금 같은 양념까지도 갖다 날라 나를 먹여살렸다. 몇 년 전에 재회를 했는데 지금은 소원하다. 서로 먹고 살기 빡빡한 탓이려니...... .

이 친구와 지내던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공장에서 친한 친구도 있었다. 공장에서 점심을 먹고는 매점에서 빵을 두어 개는 먹어야 되는 식욕이 왕성한 때였으니 이 친구는 나에게 후식으로 빵을 사주었다. 숨이 가플 정도로 배가 부르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 친구는 지금도 일년이면 두어 번 만난다. 주로 내가 친구가 있는 진해로 가서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여전하다. 여전히 어린날이나 마찬가지로 할 말도 많고 웃을 일도 많다. 아직도 책읽기를 최고의 낙으로 알고 살고 있는 귀한 친구다. 평생 함께 살아가리, 감사할 뿐이다.

친구들이 처음으로 화장을 해보기로 한 때, 내 맆스틱은 자신이 사준다고 나를 말렸던 친구. "공부하는 니가 바르면 얼마나 바른다고" 그 무뚝뚝한 배려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또 있다. 공장에서 일하던 작업복은 주말이면 집으로 가지고 가서 빨아야 하는데 작업복을 챙기고 있는 나에게 "작업복 주어, 내꺼 빠는 김에 빨아오게" 야학을 하는 나에 대한 배려였다. 이십대 초반까지 이어진 공장생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늘 상기되는 친구다. 김윤자! 언젠가 찾아서 만나서 손을 맞잡고 감자라도 쪄 먹어야지.

휴일을 맞아 모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친구가 약속 장소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지금처럼 늦봄이었다. 나는 집으로 도로 들어가기도 무엇하고 부랴부랴 그 친구의 자취집으로 찾아갔다. 그 친구는 마루에 앉아 한가하게 볕바라기나 하고 있었다. 왜 약속을 어겼느냐는 내 말에 가타부타 말도 없었다. 지 방으로 들어와서 놀다가라는 인사도 없었다. 말 그대로 소 닭 보듯, 개 닭 보듯 했다. 이후 나는 나를 싫어하는 친구도 있구나, 나와 놀기 싫은 친구도 있을 수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야학 중에 도덕을 가르친 선생님이 계셨다. 첫 수업에서 그는 우리에게 다소 거칠게 느닷없이 물었다. "여러분 왜 공부합니까?" 그의 기습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심오한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우리에게 없었다. 우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며 밤에나마 시간을 내 한 자 한 자 배우고 있는 판에 웬 철학? 질문의 답을 기다리다못해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하는 겁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의 행복 말입니다." 햐아, 그렇게 쉬운 대답을 못 드리다니. 행복해야지!!!

우리 모두 행복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이라는 황금보다 더 귀한 이 순간은 미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유일한 열쇠라는 이 엄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 지금이라는 금덩어리는 지나간 과거까지도 바꾸어주는 신비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누군가 돈도 많고 마음씀도 좋은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이렇게 그를 칭찬한다. 설혹 전생과 과거에 아주 나쁜 짓을 했을지도 모르는데도 “저 사람은 전생에 참 좋은 공덕을 쌓았던 모양이야” 라고.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이 없다. 황금보다 귀한 지금 당장 행복을 만들자. 악착같이는 말고 즐겁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