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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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12.1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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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순/경성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에 걸친 낭만주의는 발레에서 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르네상스와 절대왕정을 거치는 동안 왕족과 귀족들에 의해 보호를 받았던 (오락거리였건 간에) 발레는 프랑스 혁명 이후 새롭게 등장한 신흥계급,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아래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 발레를 제외한 다른 예술장르들은 ‘예술후원제도(patronage)’와 관련하여 그들의 예술행위의 방향을 전면 수정한 데 반해 발레는 자신을 후원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과 부를 지닌 부르주아지의 손을 잡았다. 이 다른 방향의 선택은 예술가들의 삶의 방향에 또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부르주아지의 후원을 받지 못한, 혹은 받기를 거부한 예술가들은 극도의 가난을 선택하게 되고 자신들만의 예술세계를 그리고 예술가라는 이름이 갖는 특권만을 추구 하게 되었다.

반면 발레는 부르주아지의 후원아래 낭만주의가 뿜어내는 정수만을 흡입하며 발레의 거대한 성전인 ‘낭만주의 발레’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탄생된 낭만주의 발레는 우상화된 여성, 여성무용수 즉, ‘발레리나’라는 새로운 사회 계급(페미니스트적 관점을 제외하고)의 등장을 동반했다.

창백하고, 순결함을 표면에 내세운 발레리나들은 그녀의 사생활과는 무관한 새로운 ‘이미지’ - “특유한 기능 속에서 반영이나 거울의 이미지가 아니라 실재의 세계에서 차원을 제거하거나 세계의 실재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환상의 무대를 창조하는 이미지(배영달: 2000, p 179)” -를 발산하며 낭만주의자들의 앞에 등장했다. 그녀들은 낭만주의자들(특히, 남성, 발레광, 부르주아지)의 보호 본능을 야기 시키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되었다. 그녀들은 그들에게 정의로움으로 그녀들을 지켜내야만 하는 대의명분과 사랑에 대한 열병을 제공하였다. 그리고는 끝내 가질 수 없는 하나의 대상임을 상기시키는 고통을 안기면서 그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발레리나들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 그리고 그녀들의 ‘이미지’와 ‘실재’를 혼돈 하는 그들 낭만주의자들의 열병은 마치 오늘날의 연예인들과 그네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오해를 가진 대중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오늘날 까지도 재현되며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녔다고 믿고 있는 낭만주의 발레는 과연 어떠한 이유로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곁에 남아있는가.
 
그것은 어쩌면 낭만주의의 시대상도 낭만주의의 위대한 예술가들에 대한 찬미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근대 이성의 박제된 전리품이며, 오직 남아있는 것은 새롭게 탄생될 발레리나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새로운 시즌에 새롭게 탄생하는 새로운 ‘지젤’과 ‘라 실피드’ 에 대한 열망 그것일 것이다. 그것은 근대 이후 극장을 통해서 유포되는 하나의 유행과도 같은 것이며 그것을 공유하는 무리들에겐 사회 내 마니아라는 새로운 층의 형성을 만든다. 마치 새롭게 출시된 명품을 소유한 것과도 같은, 명품을 갈망하는 것과도 같은, 더 나아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명품을 나만은 가질 수 있다는 특권과도 같은. 이것은 ‘과시적 소비’와 ‘비과시적 소비’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발레의 무엇을 보는 것일까. 춤추는 발레리나들은 무엇을 갈망하는가. 사람들은 발레리나가 만들어 내는 환상을 보며, 발레리나는 환상을 만들 수 있다는 특권을 부여 받은 양 거만하다. 그것은 흡사 전람회를 다녀온 관람객들이 무엇을 보는 지도 모르는 채 무엇을 보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음악회를 다녀온 관객들이 무엇을 들었는지도 모르는 채 무엇을 들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예술가들 스스로가 신으로부터 천재라는 특권을 부여 받은 냥 여전히 거만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는 이 시점에 와서 아니 ‘예술의 사라짐’이, ‘예술의 죽음’이 기획되는 이 시점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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