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남한산성(南漢山城)
진주성-남한산성(南漢山城)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09.20 18:5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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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남한산성(南漢山城)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남한산성에 있는 산성 8km 행궁 정문인 한남루가 있다. 솟아 오른 산봉을 돌로 쌓아 옹벽을 만들고 삼면이 험한 산벼랑으로 되어있고 한면은 강이나 계류 천지(泉地)가 있는 곳을 택하여 골짜기의 좁은 통로를 이용하고 여기에 성문을 만들어 이용했다. 고구려의 요동산성 평양외성 백제의 부여 공주 행주산성 남한산성 및 경주산성 등 유명하나 곳곳에 산성이 마을 주변에 있다. 우리나라 남한산성은 군사적으로 요충지였고 역사적으로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조 선조(1595)에 의해 축조 그 후 여러차례 중수 보완하였다.

원래 백제의 왕도였던 곳으로 높이 2.2m 둘레 7.2km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성내에는 숭렬전 연무관 침과정등 있어 사적제 57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1년 가을 행궁 정문인 한남루 등 복원 공사를 하여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우리나라 11번째로 등재 되었다.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다양한 군사방어 기술을 집대성하고 자연 지형을 활용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했다는 점과 임시 수도의 기능을 갖춘 유일한 산성 도시로 인정받았다. 남한산성은 조선의 자주 독립 수호를 위해 싸운 항전의 역사로도 유명한데 병자호란 때 선조임금이 47일간 머물며 청나라에 결사적으로 맞섰으며 1896년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봉기한 1600여명의 의병이 이곳에서 일제와 싸우기도 했다. 1907년 군대 해산령을 내린 일제가 성안의 무기고와 화약고를 파괴하면서 사찰과 문화재가 훼손되어 남한산성은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질 뻔했다.

이러한 역사의 굴곡을 간직한 남한산성은 10여년의 복원작업 끝에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되살아 난 것이다.

병자호란때 굴욕의 항복을 한 고전장(古戰場)병자호란 후에 봉암와성 한봉외성 신남성포루 돈대 옹성 암문 등 증축 동서남의 문루 4방에 장대축조 성벽의 주위 8km이다 성내에는 숭렬전 연무관 침과정이 있으며 백제의 토기 기와조각이 발견 현존 성벽은 조선 광해군때 시작하여 1626년 인조4년에 여러차례 증·수축했다.

사적57호로 지정되어 있다. 행군의 정문인 한남문은 누각형식의 2층 구조로 되어있어 기존의 한양 도성에 있는 궁의 정문을 연상 같은 형식의 구조로 되어 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石柱)이 오래되었다는 증표 주변의 해석을 통해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외상문을 오르며 어도에 대한 내용과 중문 앞에 전시된 과거의 남한산성과 행궁의 사진 속에 처연함을 느끼게 한다.

산성을 걸으면서 애잔함과 서글픔이 교차하고 나라의 권위와 국권이 존재할 때만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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