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신문 예찬
아침을열며-신문 예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0.18 18:26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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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신문 예찬


갑자기 신문이 없어지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방송매체가 있으니 걱정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외에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름의 생각으론 방송매체는 너무 공격적이다. 오죽하면 티브이를 '바보상자'라고 말하게 됐을까. 그리고 신문과 방송매체와의 비교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냥 소탈 소박한 마음으로 신문을 예찬해 보고 싶다. 말폭을 좁혀서 해보자. 신문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다 두고 나는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신문을 성실하게 읽었더니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였다. 세상에 가장 시급한 일은 전쟁을 막는 일이다. 나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소설가가 되지 못했다면 나는 그냥 대충 많은 사람들처럼 돈 버는 일에만 심신을 올인해서는 졸부가 됐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다재다능하다. 나도 역시 다재다능하다. 욕심 또한 남못지 않으니 그 욕심으로 돈 버는 일에만 사족과 두뇌를 몰두했을 것이다. 얼마나 허망할 뻔 했는가. 얼마나 지겨울 뻔 했는가. 얼마나, 징그러울 뻔 했는가 말이다. 나의 또 다른 명예욕이라는 야망에 뒤늦게 눈을 뜨고는 절망을 하다 하다 끝내 더럽게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더 지독하게는 자살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미수에 그쳐서는 평생 비참하게 살았을 것이다. 한때 나는 “미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고 말할 정도로 내 천박함을 경계했다. 그만큼 스스로의 야망과 욕망을 알았던 것이다.

어렸거나 젊은 날 나는 선생님의 말을 잘 들었다. 배우기를 잘하고 게다가 실천력도 있었다. 소설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신문을, 그것도 00신문을 보라고 권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5대 일간지를 구독하고 있으며 그 외에 4~5개 신문을 필요할 때마다 보고 있다. 신문에는 한 세상이 옹골차게 집약되어 있다. 내노라는 각 분야 석학들이 벼르고 벼른 글들을 다시 고르고 골라서 하루치 신문을 만드는 것이다. 추석 전후해서 속된 말로 ‘열라’ 바쁘더니 모처럼 적당히 한가한 휴일을 맞아 전날 신문을 펼쳤다. 차은택이라는 집약된 ‘권력’이 행한 행포를 알려준다. 이 신문이 아니었다면 차은택이 못할짓을 한 눈군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이야기가 이어지고 <최순실 딸 승마장 무료 이용 문제없게 ‘국가대표는 가능’ 규정 추가한 마사회>라는 작은 글자로 제목을 빼서 그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나저나 최순실이 누구길레 그의 딸까지 법까지 바꿔가며 이 난리를 치는지... 이런 것까지 신문이 딱 부러지게 밝혀주면 좋겠는데 그건 단지 내 욕심이고 딱 부러지게는 아니지만 거의 진실에 가깝게 알려주는 것 또한 신문의 대단한 공로다.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최저 지지율’ 그 의미나 아는가, 라고 사설에서 꼬집기도 한다. 글쎄, 그 의미를 알기나 할런지. 다산의 이야기도 전해주고 새로나온 책 이야기로 이어진다. <88만원 세대>의 저자가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이란 새책을 냈다는 소식도 전한다.

엥, 근데 이건 뭐야? 쥘리앵 프레비외가 지은 책 <입사거부서> 나도 몇 년 전에 <취직에 침을 뱉어라> 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책을 낼 당시에 재벌에 침을 뱉어라고 할 것인가 취직에 침을 뱉어라고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이는 재벌에게만 당연히 침을 뱉어야겠지만 어떤 회의도 제쳐두도 오직 취직을 위해 올인하는 우리자신들의 무지도 짜증이 나서 ‘취직’으로 갔다. 프레비외는 또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는데 What shall we do next?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단해,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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