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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중국문학(中國文學)의 특성(5)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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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20  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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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중국문학(中國文學)의 특성(5)

지난번에 이어 중국 문학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917년에는 ‘어체(語體)운동’과 병행하여 어체시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어체시(혹은 백화시)는 결코 공전(空前)의 출현이 아니었다. 즉, 당대 원(元)과 백(白)의 백화시, 한산(寒山)과 십득(拾得)의 승시(僧詩), 송대의 주희진(朱希眞)과 이청조(李淸照)의 사, 원대의 산곡(散曲)과 명대의 공안파시 가운데서 많은 백화체를 볼 수 있다.

다만 그를 종의 계승이나 혹은 횡의 이식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아직도 시련 중에 있어 말할 수 없다.

‘신시’는 호적(胡適)의 <상시집(嘗試集)> 발행에 기초를 두었고, 그 뒤 신월파(新月派)에 의한 외국시 사조의 수입에 따라 새로운 형식, 새로운 사상의 부각에 열심하고 있다. 1949년 중공에 신정권이 서고 국부가 타이완에 자유 정부를 옮기기까지 시단에는 각종의 스타일과 각종의 주의가 시험되었는데, 그중 주의할 것은 전통적인 사곡(詞曲)을 변화시킨 백화시 초기의 호적·유대백(劉大白) 등과 서구의 낭만주의를 모방한 서지마(徐志摩) 주상(朱湘) 등의 신월파, 서구의 현대파를 모방한 이금발(李金髮)·대망서(戴望舒) 등의 상징파, 그리고 전투적인 참여시를 쓴 좌경파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의 대만 시단은 전통적인 온유돈후(溫柔敦厚)와 시언지(詩言志)의 시교(詩敎)를 계승한 자유시파와 서구적인 초현실주의 및 모더니즘을 도입하여 새로운 기교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데, 80년대에 들어 중공은 현대적 예술기교를 도입한 몽롱(朦朧)파가 등장하고 있다.

시여(詩餘)나 장단구(長短句)로 불리는 사는 더러 육조(六朝)에서 근원을 찾기도 하지만 초당의 돈황사를 그 연원으로 삼는다. 이백의 <보살만(普薩蠻)>과 <억진아(憶秦娥)>등을 최초의 작품으로 보지만 위작이기 쉽고, 또한 위응물(韋應物)의 <집응곡(輯應供)>, 백거이의 <화비화(花非花)>·<억강남(憶江南)>·<장상사(長相思)> 등은 근체시의 형식에서 탈변하여 사의 체재를 잡기 시작했으나 역시 사가 안정된 장르로 인정된 것은 만당의 온정균이 최초의 사집인 <악란집(握蘭集)>과 <금전집(金荃集)>을 내면서부터인 것이다. 온(溫)은 사가 시의 부용(附庸)에서 독립하게 한 첫 번째의 공로자로서 그는 이미 <귀국요(歸國遙)>·<정서번(定西番)>·<남가자(南歌子)> 등의 사조를 창제했다.

‘오대’에 와선 사 작가가 군출했다. 촉(蜀)에는 위장(韋莊)을 비롯하여 우교(牛嶠)·모문석(毛文錫)·우희제(牛希濟)·설소온(薛昭蘊)·고경(顧藑)·녹건의(鹿虔扆)·모희진(毛熙震)·이순(李恂)·구양형(歐陽炯) 등이 있고 남당(南唐)에는 이후주(李後主)를 비롯하여 이중주(李中主)·풍연기(馮延己)·장필(張泌) 등이 있고, 후당에는 장종(莊宗)·손광헌(孫光憲) 등이 있는데, 그들의 작품은 거의 조숭조(趙崇祚)가 편한 <화간집(花間集)>에 실려 있다. 왕국유(王國維)가 <인간사화(人間詞話)>에서 ‘온비경지사, 구수야, 위단기지사, 골수야, 이중광지사 신수야’라 한 것처럼 온·위·이(후주)가 오대사를 장식했다. 특히 이후주는 사의 안계(眼界)와 제재를 획기적으로 넓히고 전환시킨 ‘사중지제(詞中之帝)’로 불리게 되었다.

‘송대’는 당대가 시의 등봉기(登峯期)였던 것처럼 사의 등봉기였다. 작자·작품의 양에서뿐 아니라 풍격의 확대와 성숙을 보던 때였다. 송초의 장선(張先)·안수(晏殊)·안기도(晏幾道)·구양수(歐陽脩) 등의 사는 완약(婉約)하고 청려하나 오대의 작품을 연습하여 재기가 부족했다. 그러다가 유영(柳永)과 소식에 이르러 새로운 사경(詞境)을 개척하여 유영은 만사(慢詞)의 기초를 닦아 자유자재로 전개시켜 북송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작가가 되었고, 소식은 호방체(豪放體)를 창세하여 기타의 좁고 아름답기만 한 사경을 넓혔으나 음률이 화해치 못한 것이 흠일 뿐이다. 다시 진관(秦觀)·하주(賀鑄) 등을 거쳐 북송 말년의 주방언(周邦彦)에 이르러 진일보의 국면을 마련하였다. 음악에 정통한 그는 창제한 사조(詞調)가 많은 한편 당·오대의 사가를 집대성하였고 남송에 사풍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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