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 경남 억새평원으로 떠나자
가을 끝자락 경남 억새평원으로 떠나자
  • 장금성기자
  • 승인 2016.11.24 18:34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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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화왕산 등 억새로 이름 높은 산들 많아
▲ 천성산 화엄벌

겨울로 넘어 가는 문턱, 늦가을 아침과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스산하다. 온 산을 붉게 물들였던 단풍은 남녘의 끝에서 위태하게 매달려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그러나 낙옆 지르밟는 소리는 요란하면서도 운치가 있고 홍단풍은 여전히 짓다. 홀씨 떨어진 억새는 12월까지 즐길 수 있다.

경남지방에는 밀양의 영남알프스나 창녕 화왕산, 양산 천성산 등 억새평원으로 이름 높은 산들이 많다. 잡풀이 거의 없고 매서운 바람이 불수록 억새가 일렁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시기에는 홀씨가 다 떨어져 흰 빛은 많이 잃었지만 대는 남아 물결을 일으킨다. 꽃가루가 거북한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이 나을 수도 있다.

억새와 갈대는 흔히 혼동된다. 생김새는 물론 꽃피고 지는 계절까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억새와 갈대는 혼동돼서 쓰였다. 전남 장성에 있는 갈재는 갈대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노령(蘆嶺)이라 부르지만 실은 갈대가 아니라 억새이다. 또 한가지 혼란스러운 것은 부들.

같은 벼과의 1년생 풀이지만 억새와 갈대는 엄연히 다르다. 가장 쉬운 구분법은 억새는 산이나 비탈에, 갈대는 물가에 무리를 이뤄 산다는 점이다. 산에 있는 것은 무조건 억새이다.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도 있으나 산에 자라는 갈대는 없다.

억새는 은빛이나 흰색을 띠지만 억새아재비, 털개억새, 개억새, 가는잎 억새, 얼룩억새 등 종류에 따라 색깔이 다소 다를 수 있다. 갈대는 고동색이나 갈색을 띠고 있다. 억새는 대부분 키가 120cm 내외로 일조량에 따라 사람의 키만한 억새도 있다. 갈대는 키가 2m이상 큰다. 억새의 열매는 익어도 반쯤 고개를 숙이지만 갈대는 벼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물가에 자라는 부들은 키가 억새나 갈대의 3분의 2정도이고 소시지처럼 생긴 꽃을 피운다.

영남알프스는 밀양, 청도, 울산의 3개 시도에 모여 있는 해발 1000m이상인 가지산, 운문산, 재약산, 신불산, 취서산, 고헌산, 간월산의 7개 산군(山群)이 유럽 알프스의 풍광과 버금간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 영남알프스 간월산 억새

영남알프스는 풍광도 수려하지만 억새로 대표되기도 한다.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능선으로 펼쳐지는 억새밭은 다른 산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관이다. 그중에서도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4km, 1시간 거리의 수백만평의 신불평원은 국내 억새평원 중 가장 넓은 억새평원이다. 잘 가꾸어 놓은 간월재 억새도 볼 만하다.

이곳의 억새는 키가 작다. 멀리서 보면 마치 잔디밭 같다. 능선의 통도사쪽 동남 방향은 암벽지대, 주능선은 억새군락지이다. 나무가 거의 없이 억새만 있는 능선에서의 조망이 장쾌하고 영남알프스 산군이 시야에 들어온다. 영축산 산자락에는 3대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가 자리잡고 있다.

창녕군에 위치한 화왕산 억새밭은 산 위에 펼쳐지는 광활한 대초원이다. 이곳의 억새는 사람의 키를 훨씬 넘으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옴팍한 대규모의 분지가 온통 억새꽃 하얀 솜이불을 두르고 있다.

화왕산 억새밭을 한 바퀴 도는 데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화왕산 억새밭은 새벽녘에는 또 다른 진풍경이 펼쳐진다. 밀려온 안개가 푹 팬 초원을 가득 채우면서 초원은 하얀 호수가 된다. 안개가 억새꽃 사이사이를 지날 때면 억새밭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하얀 목을 내밀고 우유빛 욕조에서 목욕을 하는 듯한 선경을 이룬다.

정상부에는 화왕산성이 있다. 천연의 요새인 기암절벽에 조성한 화왕산성은 임진왜란 때 크게 명성을 떨친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장군과 의병들의 활동무대였던 호국영산이기도 하다.

 

▲ 화왕산 배바위

양산에 위치한 천성산 화엄벌은 천성산 상봉(예전에는 원효산) 오른쪽 사면에 펼처진 25만 여평의 광활한 평원이다. 화엄벌은 신라 때 원효대사가 천명의 승려에게 화엄경을 강설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중간에는 ‘화엄늪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산습지 ‘화엄늪’이 있다. 보통 늪지대는 구릉에 있는데 화엄늪은 능선에 있다.

화엄늪에는 희귀한 꽃과 식물(끈끈이 주걱)등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어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천성산의 산행기점은 여러코스가 있으니 화엄벌 억새만을 보려면 내원사 계곡에서 오르는 것이 가깝다. 억새와 공룡능선을 함께타는 코스를 잡으면 가을산행으로 제격이다. 정상은 군 기지가 있어 오르지 못하고 옆으로 돌아간다. 위로 올라갈수록 억새키가 점점 커진다.

억새꽃은 그 생김이 백발과 비슷해 쓸쓸한 정서로 와닿는다. 그래서 황혼과 잘 어울린다. 억새꽃을 가장 멋지게 감상하려면 해질 무렵 해를 마주하고 보아야 한다. 어두운 하산길이 위험하다면 해가 45도 이상 누웠을 아침과 오후 늦게 가는 것이 적당하다. 낙조의 붉은 빛을 머금으며 금빛 분가루를 털어내는 억새를 바라볼 때, 스산한 가을의 서정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산행 후 뜨거운 온천에서 피로를 푸는 여유로움이 있다. 가을 산불방지를 위해 국립공원은 대개 11월 15일부터, 그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산불방지를 위해 등산로가 부분 또는 전면 통제된다. 사전에 확인을 해야 한다. 장금성기자·자료제공/한국의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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