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난로가 있는 풍경
진주성-난로가 있는 풍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2.22 18: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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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난로가 있는 풍경


연말이 코앞이고 크리스마스가 낼모레다. 추위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이다. 이맘때면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도 있고 진눈개비가 내릴 때도 있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도 있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장소이면 어느 곳이든 연탄난로가 주전자의 물을 따끈따끈하게 끓이고 있거나 아니면 장작난로가 따다닥! 하고 장작불이 타오르는 소리를 내며 쇠뚜껑을 벌겋게 달구고 있다. 의자를 놓고 사람들이 삥 둘러앉았다. 어쩌다 말고는 서로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버스시간을 기다리는 정유소의 대합실이나 담배연기가 자욱한 시골다방의 옛 풍경이다. 난로를 향해 모두가 손을 내밀고 볼이 발갛다. 시키지 않아도 불 조절을 위한 바람구멍을 늘였다 줄이기를 거듭하거나 쇠갈고리로 뚜껑을 열고 때맞추어 장작개비를 알맞게 집어넣는다.

휴대폰을 모르는 그들은 초조해 하거니 불안해하는 기색은 전혀 없이 느긋하고 평온하다. 간간이 묻기도 하고 대답도 한다.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도 귀찮아하는 표정이 아니다. 주전자의 따끈한 오차물을 따라마시며 모르는 사람의 컵에도 따라준다.

무릎이 뜨거워서 의자를 돌리면 옆의 사람도 틀어 앉아준다. 아무도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로 가까이로 또 한 사람이 새로 들어온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고개를 가볍게 숙여서 인사를 한다. 얼핏 보아 틈새가 너른 쪽에 앉은 사람이 의자를 끌어 얼른 틈새를 넓혀준다. 옆 사람의 그 옆 사람까지도 의자를 조금씩 당겨준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의자를 다잡아 당기며 의자 놓을 틈새를 내어준다. 옆에 앉은 사람이 어깨에 얹힌 눈도 털어준다. 그도 모르는 사람이다. 바람이 아직도 세차게 불더냐고 모르는 사람이 물어도 대답을 한다. 눈이 그쳤냐고 물어도 모르는 사람은 또 대답을 한다. 서로는 조금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 귀찮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전라도 쪽에는 눈이 많이 와서 섬으로 가는 배가 끊겼다고 한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심부름이라도 온 것처럼 일러준다.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모두는 귀를 쫑긋하고 들어준다. 모두가 제 갈 길을 가야하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다들 어디만큼 갔을까. 그들이 모두 떠나간 뒤에는 사람정이 그리운 세상이 되었다.

송진내음이 향긋한 장작난로 가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구수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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