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이지함의 토정비결
진주성-이지함의 토정비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6.12.27 18:2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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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이지함의 토정비결


이지함(李之菡 1517-1578) 조선 선조때의 이인(異人) 호는 토정(土亭) 시호는 문강 본관은 한산(韓山) 목은 이색의 후손 현령 치(穉)의 아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이고 화담 서경덕(徐敬德)에게 글을 배웠다.

제가잡술(諸家雜術)에 정통하였으며 포천과 아산 현감을 끝으로 병사(病死)했다. 괴상한 거동을 잘하고 기지 예인 술수에 관한 일화가 많으며 율곡 이이와 친하여 성리학을 배우라는 몇 번 권고를 받았으나 욕심이 많아 배울 수 없다고 하였다 한다.

1713년 이조판서로 추증(追贈)되고 시호가 내렸다. 새해가 오면 고단한 삶으로 백성들은 주술(呪術)에 의지해 한해의 희망을 점치곤 했다. 정초 사람들이 모여 들춰보는 운세는 토정비결이다. 토정비결을 쓴 사람은 이지함으로 정치를 했고 정치를 펼친 곳은 충남 아산지역이였으나 서울 마포 사람이다.

호는 토정으로 마포 강변에 흙으로 집을 짓고 살면서 성리학 의학과 천문학 지리와 수리(水利)를 전공했다. 평소 욕심과 돈에 관한 관심이 없고 남 돕기를 잘했다. 쓰고 다니는 갓에 구멍이 나자 쇠솥을 철모로 만들어 쓰고 다녔다. 평생 공부에 전념하였고 말년에는 경기도 포천 현감때 임진강이 여름 장마비로 범람을 예견하여 주변 백성들을 피신시켜 피해를 사전 예방시켜 후일 칭송을 받았고 아산 현감때에 관아 한편에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떠돌아 다니는 거지와 노약자들을 모아 체력에 따라 일감을 주고 일한 만큼 재물(財物)을 주었다. 그 흔한 선정비(善政碑) 하나가 세워진 곳이 없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은 태세(太歲) 월건(月建) 일진(日辰)을 숫자적으로 따저 그 해의 신수를 보는데 쓴다 육갑(六甲)에 의하여 년월일에 점수를 부여하여 일년 12월을 월별로 초중하로 나누어 4자(四子)로 된 구(句)를 2절로 하여 월6절로 되어 있고 일년의 총운세를 4자로 하여 8절(4계절)로 되어있다. 토정비결을 보는 방법을 책자 후미에 조견표를 만들어 그 숫자를 본문에 찾아보면 자기 운세를 알 수 있다. 태세는 나이 월건은 생일달 일진은 생일날을 보고 본문을 찾아 보면 운세가 나온다. 나이(태세수) 생일달(월건수) 날자일(일진수) 6갑에 의한 괘가 나왔다고 보면 총괄 괘상은 東風解凍 枯木逢春 水流城邊 積小成大 好花春暮 夢覺南天 洛陽城東 桃花生光

(해설) 곤궁한 사람이 점점 힘이 펴지고 또 공명할 괘이다.

그가 지은 토정비결이 작자 미상의 책으로 내려오다 그가 지은 책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선정을 베푼 관아터는 영인 초등학교로 관아 입구에 여민루(與民樓)가 남아 있고 주변에 아산 향교가 이곳으로 이전 평생 검약 구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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