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국문학(中國文學)의 특성(10)
칼럼-중국문학(中國文學)의 특성(10)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2.05 18:1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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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강신웅/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 교수·한국국제대학교 석좌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중국문학(中國文學)의 특성(10)


지난번에 이어 중국 문학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인(元人)’의 남하로 송이 멸망당하자 금과 원에서 수입된 호악(胡樂)은 조잡하고 처량한데다가 첨급(尖急)하여 사에 접창(接唱)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모두가 부를 수 있는 새 곡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나타난 것이다. 곡은 사(詞)의 변조로서 그것은 크게 ‘소령(小令)’과 ‘투수(套數)’를 포괄한 희곡으로 이분할 수 있다. 이는 바로 고시·근체시·사가 도시(徒詩)로 물러앉으면서 시의 쇠퇴기에 발생한 체재로서, 그 중 희곡은 앞장에서 따로 논했으니, 여기서는 다만 산곡만을 논한다. 원·명 시가의 주류는 산곡이다. 곡체도 새로이 변화되었지만 이를 쓰는 곡가(曲家)도 많아져서 원대 곡가는 187명에 달하며, 작품은 거의 임눌(任訥)이 집성한 <산곡총간(散曲叢刊)>에서 볼 수 있다. 원대 산곡도 사와 마찬가지로 완약과 호방의 두 파로 나눌 수 있는데 사가 완약을 정종(正宗)으로, 호방을 변체로 삼는 데 반하여 곡은 호방을 정종으로, 완약을 변체로 삼고 있다.

원곡 4대가로 불리고 있는 마치원(馬致遠)·관한경(關漢卿)·정광조(鄭光祖)·백박(白樸) 등의 작품은 거의 호방파의 산곡으로, 특히 마치원의 <추사야행선(秋思夜行船)> 일토는 ‘원인지관(元人之冠)’이라 평가되고 있으며, 관한경의 곡은 ‘경연취객(瓊筵醉客)’같다 하였고, 백박의 곡은 ‘붕박구소(鵬博九霄)’같다고 하였다.

이 밖에 풍자진(馮子振)·유치(劉致)·관운석(貫雲石)·장양호(張養浩) 등은 모두 호방파에 속한 곡가들이다. 청려한 산곡으로 완약파를 이룬 장가구(張可久)의 <남려일지화(南呂一枝花)> 일토는 마치 원의 <야행선>과 함께 원곡의 관수(冠首)로 칠 수 있으니, 그의 곡은 ‘요천생학(瑤天笙鶴)’같다고 평했다. 장가구와 병칭되고 있는 교길(喬吉)의 곡은 그 풍격이 생동하고 청담하여 ‘신오고랑(神鷔鼓浪)’같다고 평했다. 장가구와 교길은 당대의 이하(李賀)와 이상은(李商隱), 혹은 송사(宋詞)의 온정균(溫庭筠)이나 위장(韋莊)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장(張)의 곡이 생채가 짙고 엄격하다면, 교(喬)의 곡은 색채가 연하고 활동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밖에 요수(姚燧)·노지(盧摯)·서재사(徐再思)·이치원(李致遠) 등은 모두 완약파에 속한다.

‘명대’의 산곡은 초기에는 원대의 북곡을 답습했지만, 그 뒤 곤강(崑腔)이 유행하자 모두 남곡을 다투어 짓게 되었다. 명대의 곡가로는 <해부산당사고(海浮山堂詞稿)>를 지은 가장 생기있고 호방한 풍유민(馮惟敏)과 <추수암화영집(秋水庵花影集)>을 낸 시소신(施紹莘)을 대표로 내놓을 수 있겠고, 이 밖에 탕식(湯式)·왕반(王磐)·심사(沈仕)·양신어(梁辰魚)·심경(沈璟) 등이 있다.

‘청대’의 곡가론 모형(毛瑩)·심겸(沈謙)·주이존·여악·오석기(吳錫麒)·우개(尤個)·심청서(沈淸瑞)·석온(石韞)·진운(秦雲)·위희원(魏熙元) 등이 있으나 모두 원·명 산곡의 수준에 오르지 못하고 다만 허광치(許光治)의 <강산풍월보(江山風月譜)>와 조경희(趙慶熹)의 <향소주취곡(香消酒醉曲)> 등이 원·명에 비해 손색이 없다.

민국 이후에는 다만 오구안(吳瞿安)의 <상애곡록(霜厓曲錄)>이 있는데 신체시 운동에 밀려 시만은 그 명맥을 유지한다 하겠으나 곡은 사와 더불어 점차 유물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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