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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잘 맞는 양복을 입어야 진짜 멋쟁이진주 청미라사 황두헌 사장
한송학기자  |  7571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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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7  18: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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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두헌 사장은 “옷을 가장 잘 입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는 것”이라며 “고마움을 표현해 줄때 저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라사’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라사는 기성복이 아닌 직접 사람의 몸 사이즈를 재고 옷감을 재단해 옷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맞춤 정장을 파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 라사의 사전적 의미는 없으며 포르투칼어의 모직물의 일종인 raxa를 라사로 불러오다가 비슷한 음을 한자로 가져와 사용하다보니 그물 라(羅), 모래 사(紗)로 취음했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기성복 정장을 입고 다니지면 과거에는 90% 이상이 이 라사에서 양복을 맞춰 입었다. 당시 기성 양복은 사이즈의 종류가 적어 입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1980년대 라사점은 진주에서만 200곳 이상이나 될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정장, 작업복 등 거의 모든 옷을 이 라사에서 맞춰 입었다고 하니 라사점이 큰 호황을 누렸었다. 하지만 산업화에 밀려 공장에서 모든 옷들이 대량 생산되면서 라사점은 하나씩 문을 닫았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라사점의 호황기 이후 30년, 현재 진주에서 운영되는 라사점은 3~4군데 정도에 불과하다. 그 중 한곳은 진주시 평안동 롯데 인벤스 건너편 청미라사이다.

청미라사는 현재의 장소에서 35년 동안 라사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대로변이라 눈에 잘 띌 법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청미라사를 운영하는 황두헌(60) 사장은 경력 45년의 장인이다. 기성복에 밀려 대부분의 라사점이 문을 닫을 때 황사장은 실력 하나 믿고 뚝심 있게 지금까지 라사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황 사장은 “요즘 사람들 양복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불편하다. 동생 옷, 또는 형 옷 입은 것처럼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닌다. 기성 양복에 몸을 맞춰서 다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황 사장은 또 “옷을 가장 잘 입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입는 것”이라며 “저의 노력과 실력을 알아주고 꼭 금전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고마움을 표현해 줄때 저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진주시 평안동에 위치하고 있는 전문 양복 맞춤점 ‘청미라사’ 전경
다음은 황두헌 사장과의 인터뷰이다.

-언제부터 옷 만드는 일을 했나
▲양복 만드는 일은 14살때부터 시작했다. 진주시내 잘한다는 양복점에서 일을 배웠고, 더 많은 기술을 배우려고 옮겨 다니기도 했다.

-지금 라사점은 진주에 몇군데인가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울 때만 해도 진주시내 양복점이 200여곳이었다. 80년도 초반쯤 되는 것 같은데 광미, 대성 등 유명한 곳이 많았다.

-지금은 몇군데나 있나
▲저를 포함해서 순수 핸드메이드 양복점은 3~4군데 정도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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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어디서나 흔하던 맞춤 양복점
산업화 대량생산 기성복에 점차 밀려
진주지역 라사점은 3~4곳만 남아

‘청미라사’ 35년째 오직 한곳에서 한길
대로변 위치하지만 모르는 사람 더 많아
“내 옷 좋아하고 찾아줄 때까지 계속…”

세계서 하나뿐인 핸드메이드 양복 매력
경력 45년 양복장인 라사점 명맥 이어
“고마움의 인사 받을때 가장 보람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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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장소에서 계속 라사점을 운영 했나
▲35년동안 지금의 자리에 있다. 라사점을 아는 세대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라사점에 취직하게 된 계기는
▲당시에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공부를 잘해도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일을 하러 나가야 했던 시대였다. 저는 특별히 공부를 잘해서 진학하기 보다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이웃집 아저씨가 양복점을 다니는 분이 있었는데 따라가자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시대가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사는 시대였다.

-일을 배우면서 힘들지 않았나
▲매일 눈물을 흘리면서 일을 배운 것 같다. 옆에서 일을 보조하다가 조그만 실수도 뺨을 맞는 것은 기본이었다. 손으로 맞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잘못하면 옷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연장 등이 수시로 날라 왔다. 당시 옷 만드는 어른들의 일을 배우기가 힘들었다.

-독립은 언제 했나
▲10년 정도 일을 배우고 독립한 것 같다. 25살때 쯤인 것 같다. 지금 청미라사가 처음 독립한 장소 그대로이다.

-25세에 가게를 차릴 정도면 손재주가 좋았나
▲다른 양복점을 하는 분들에 비해 조금 좋았던 것 같다. 10년 동안 일을 배웠으니 빨리 독립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실력에 따라 양복의 가격이 차등이 있나
▲당연하다. 실력이 좋다고 소문난 양복쟁이들이 만드는 옷을 곱절이 비싸기도 했다. 양복의 가격이 실력에 따라 차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라사점을 운영하는 것은 실력이 좋아서인가
▲라사점을 운영을 못하고 가게 문을 닫는 것은 손님이 없어서이다. 손님이 없는 것은 실력이 특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저는 손님이 지금도 꾸준히 있다. 제 옷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라사점은 언제가 가장 부흥기였나
▲1980년대 초반인 것 같다. 당시에 진주에만 라사점이 200곳이 넘을 정도였으니 가장 부흥기 였다.

-가장 잘나가는 시절은 언제였나
▲기술을 배우던 시절과 개업 이후 10년 정도가 저 개인적으로 호기였다고 생각한다.

-돈도 많이 벌었나
▲라사점이 돈을 크게 벌수 없는 구조이다. 옷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옷에 대한 가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꾸준하게 버는 것뿐이다.

-급변하는 최신 유행에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과거보다 지금이 유행에 적응하기가 더 쉽다. 인터넷 등의 매체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유행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패션의 본고장인 유럽의 유행이 국내에 들어오려면 2~3년이 걸렸다면 지금은 실시간 수준이다. 그리고 양복협회에서 지침을 만들어 소재, 기준 치수, 디자인 등의 최신 정보를 공유하고, 세계 경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트렌드에 따라가기가 지금이 더 수월하다.

   
▲ 황두헌 사장이 양복 재단을 하고 있다.
-맞춤 정장 가격은 어떻게 되나
▲50만원부터 300만원까지이다. 대부분이 50~100만원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핸드메이드 정장을 입는 특별함이 있다는 것이다.

-단골손님들은 많은가
▲단골손님들은 전국에 있다. 저에게 가장 VIP 손님은 서울분으로 지금까지 수십벌의 옷을 해 갔다. 서울에 맞춤정장을 파는 곳이 없는 곳도 아니고 저보다 실력도 뛰어난 분들이 분명히 많이 있을 것이다. 이 분은 제가 만드는 옷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기 때문에 수십년 동안 찾아주는 것이다.

-옷을 만드는데 시간은
▲2~3일 정도 걸린다.

-어떤 분들이 많이 오시나
▲체형을 기성복에 맞추기 힘드신 분, 맞춤 정장을 입어보신 분, 계속 입어오신 분 등 고객층은 다양하다. 전 양복 고객 중 맞춤을 입는 분은 5% 정도 되는 것 같다. 입어보면 체형에 맞게 정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분이 찾아주고 계신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잘 입나
▲잘 입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몸에 가장 잘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잘 입는 것이다.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맞지 않는 옷들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또 요즘에는 양복에 스판 재질을 섞은 옷감으로 옷을 만드는데 이는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잘 찢어지기 때문에 잘 늘어나라고 스판 재질을 섞은 것이다. 잘 맞지 않는 옷을 팔아먹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옷을 만들고 보람을 느낀 적은
▲진주에 업무차 왔다가 저희 업소 앞 목욕탕에 들렀다가 우연히 저의 가게를 찾아왔다. 대구분인데 저한테 처음 옷을 맞춰갔고 정말 좋은 옷을 잘 맞춰갔다고 고맙다고 문자로 인사가 왔다. 이분이 옷을 입어보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럴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

-라사점은 언제까지 운영할 것인가
▲아내는 70넘어서까지 하라고 한다. 사람 일이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고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옷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손님들이 찾아줄 때까지 옷을 만들 것이다. 기술만 가지고 45년을 버텨왔다. 아직까지 저를 알아주고 저에게 옷을 맞춰가는 손님들에게 고맙게 생각하면서 옷을 만들 것이다. 한송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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