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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재배식물의 이동과 지역환경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경남환경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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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4  18: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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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주/환경부 환경교육홍보단·경남환경연구원장-재배식물의 이동과 지역환경

한반도에서 우리의 원시 조상들은 농사를 짓기 전에 나무 열매를 따먹고 살았는데 열매 가운데서도 머루, 다래, 나무딸기들은 저장할 수 없으므로 한 계절의 식량으로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도토리, 밤, 개암은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중요한 먹거리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열매들은 탄수화물을 비롯한 영양소가 풍부하고,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지역에서 한 동안 머무는 생활을 함으로써 식물의 뿌리를 캐어 먹게 되고, 남은 뿌리를 흙속에 묻어 놓았더니 다음 해에 싹이 터서 자라고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보고 그러기를 거듭함으로써 농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야생보리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 왔다고 한다. 보리에 앞서 한반도에서는 피와 조와 기장을 먼저 재배하였을 것이다. 이것들을 오늘날에는 영양을 따지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려고 조금씩 재배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그와 닮은 잡초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빈대떡과 청포묵을 만드는 녹두는 깍지가 익으면 수확하기 전에 알이 튀어 나오는 잡초의 특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원시 조상들이 재배하였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사람이 문명의 꽃을 피우게 한 식물은 벼이다. 벼는 본디 아시아의 열대와 아열대 지방의 구릉지와 저지대에서 야생하던 식물이었는데 역사시대 이전에 아시아에서 재배되었다고 한다. 벼가 한반도에 들어온 경로는 중국을 거쳐서 북쪽에서 들어왔다는 설과 유구국(琉球國)(현재의 일본 오키나와 현)을 거쳐 남쪽에서 왔다는 설이 있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 분명하지 않다. 백제가 멸망할 때 불탔던 숯 쌀(탄미)이 발견된 사실을 보아 적어도 1300년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벼를 재배하였을 것이다.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을 부양하는 쌀은 삼국시대에 사람이 촌락을 만들고 도성을 쌓고 군대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옥수수가 유럽에 선보인 시기는 다른 곡물에 비하여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옥수수는 본디 멕시코에서 5천 년 전부터 재배한 식물이었다. 콜럼버스는 미 대륙을 발견하던 1492년에 그 부하인 스페인 사람 두 명을 쿠바에 파견하여 재배 옥수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옥수수와 고추 따위의 여러 가지 향신료를 갖고 의기양양하게 스페인으로 돌아와 유럽에 퍼뜨림으로써 그 다음의 몇 세기 동안 전쟁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

쌀은 아시아에서, 밀은 유럽에서 그리고 옥수수는 미 대륙에서 사람의 배를 채우는 기본 식량이었다. 그런데 벼는 물만 있으면 비료를 주지 않아도 상당한 양의 쌀이 생산되지만 밀은 적당한 물이 있어도 비료를 주지 않으면 한 톨의 밀알도 생산되지 못하며 또 비료를 충분히 주더라도 밀의 수확량은 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같은 면적에서 옥수수는 밀의 3배가 생산된다. 곡물의 종류에 따른 이러한 수확량의 차이는 아시아와 남미의 인구 밀도가 유럽보다 높아진 원인이 되었다.

사람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는 문화적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단조로운 음식보다는 양념이 필요하게 된다. 사람들은 양념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탐험에 나섰다.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도 그 직접적인 동기는 인도에서 양념, 그 가운데에서도 후추를 찾는 가운데 발견된 부산물인 것이다. 후추는 중세 유럽에서 대단히 희귀한 양념이었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때때로 후추열매가 땅값이나 세금 대신으로 거래될 정도였다.

우리 민족과 인연을 맺은 고추씨는 본디 남미 페루의 선사시대 묘에서 출토 되었고, 콜럼버스가 미 대륙에 도착하기 전부터 그 곳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고추씨를 스페인에 가져왔고, 그것을 포르투칼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서해안으로 가져다 재배하였다. 또 15세기에 인도와 중국의 마카오를 전진 기지로 삼아 포르투칼은 아시아에서 고추와 함께 여러 가지 양념을 팔아서 1백 년 동안 영화를 누렸고 그 영화는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넘어갔으며 이를 토대로 세계를 지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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