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배울 수 없는 사람
아침을열며-배울 수 없는 사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08.29 18: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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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배울 수 없는 사람


한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 라는 말을 아주 어린 시절 들었다. 한 권의 책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것만 고집하면 곤란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으로 듣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다. 하도 어린 시절에 들었다가 보니 누가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그런 말이 있었고 또 누군가 나에게 그 말을 했는지조차 헷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고집이 세거나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을 대할 때면 여지없이 이 말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또한 설사 그런 말이 없었다고 해도 한 가지 생각만 계속 고집하면 실제로 낭패일 것이다.

반면에 자기철학 없이 남의 생각과 지식에 의존해서 자기의 생활을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취미도 그림을 그렸다가 그만 두고 글을 썼다가는 접고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를 피우다 얼마 못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접는다. 직장도 직업도 이 걸 했다가 저 걸 했다가 하면 발전은커녕 얻는 것도 없이 바쁘기만 할 것이다. 나중에는 나는 이것을 잘 한다고 내놓을만 한 게 하나도 없이 어중잽이가 되어 버린다. 한세상을 살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한 두 가지는 움켜쥐어야 하는데. 이에 우리 속담에 좋은 것이 있다. '반풍수 집안 망한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좋을 것 하나도 없다는 건 너무 분명한 진리다. 고지식함이나 고집이라고 지나쳐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 가장 나쁜 것은 자신의 고지식함이나 고집을 자신의 철학이거나 자신만의 지혜로 생각하는 경우이다. 진짜 환장한다. 이웃에 이제 육십대 중반에 접어든 여인이 있다. 그녀는 건축물의 벽이나 이음새의 균열을 방지하는 부속품을 조립하는 일을 한다. 흔히 우리 주부들이 말하는 부업을 한다. 하나를 조립하면 4원이나 5원이다. 2천개를 해야 약 만 원을 벌 수 있다. 근데 진짜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일을 하느라 그녀의 손가락 끝이 다 갈라졌다. 일을 할 때는 덜 아픈데 일을 안 할 때가 더 아프다며 그녀는 울상을 짓는다. 갈라진 틈새로 피가 새나오는 걸 보며 나도 울상이다. 그래도 그녀는 검소하고 부지런해서 남에게 빚지지 않고 오히려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며 살아가고 있다. 요새는 파지도 줍는다며 배시시 웃는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엔 남편을 의지하며 별일 없이 살았다. 그러나 사업을 잘 해가던 남편이 갑자기 간경화로 돌아갔다. 그녀에겐 무거운 빚과 고독이 태산처럼 남겨졌다. 넓은 아파트를 정리하고 가난한 동네 작은 집으로 이사한 그녀는 남편을 그리워만 했다. 틈만 나면 남편의 산소에 가는 게 유일한 낙이 됐다.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리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낮이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 표시를 절대로 내지 않았다. 그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심지어는 단 둘이 살고 있는 아들마저도 그런 사실들을 몰랐다. 알만한 이웃이 교회라도 가보라고 하면 그녀는 자신이 교회에 가지 않아야 되는 이유를 조곤조곤 말한다. 또 누군가 절에 가서 공을 들여 기원을 해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은 조상을 모시기 때문에 다른 신이 필요 없다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휴일이 되면 서둘러 남편의 산소에 가서 소주를 마시고 내려온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에게 이웃에 사는 점쟁이자 굿쟁이인 여인이 굿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면 지하에 있는 남편도 좋아할 거라고 꼬셨다. 그래서 굿을 했다. 굿을 하든지 춤을 추든지 모두 자유인데 언제 어디든 돈이 문제다. 굿하는 데 들어간 돈이 자그마치 600만 원이었다. 백만 개의 부품을 조립해도 안 되는 돈을 굿판을 벌이는 데다 처박았다. 차라리 교회나 절에 가지. 아무리 제멋에 산다지만 참으로 안타깝다. 효과가 있었냐고 물으니 맘이 좀 편해졌단다. 마음이 좀 편해지자고 그렇게 어렵게 번 돈 600만을 들여 굿을 해?? 그녀는 달력에 빨간 글씨인 날엔 또 남편의 산소에 갈 것이다. 그건 그리움이 아니고 고질적 나쁜 습관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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