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70년대 치산녹화의 상징물
진주성-70년대 치산녹화의 상징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7.12.05 18: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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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70년대 치산녹화의 상징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선가(禪家)에 오랜 화두로 전해지지만 풍수에서도 산과 물은 화두이다. ‘산주인정 수주재’(山主人丁 水主財) 라는 말이 있다. ‘산은 인물을 주관하고, 물은 재물을 낳는다’는 뜻이다.

민둥산(童山)은 초목(草木)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돌산(石山)은 흙 한줌 제 몸에 실어주지 못하게 한다. 당연히 그 계곡에 물이 흐르지 못한다. 인물도 재물도 나올 수 없는 땅이다. 지금 북한의 산과 물을 보면 그 운명을 알 수 있다. 산은 민둥산이요 개울은 물이 없다. 재물과 인물 나오기가 어렵다. 핵무기 수천기를 보유했던 소련이 90년대 초 해체된 것도 결국 ‘항산(恒産·먹고사는 일)’이 문제였다. 행정의 달인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한때 대권 후보로까지 거명된 고건 전 총리는 현재 그는 북한 산림 복원 지원 사업을 위해 ‘아시아녹화기구’를 만들어 북한에 녹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은 치산녹화를 국정 과제로 결정. 6·25 전쟁으로 산들이 황폐하였고 농촌의 땔감으로 민둥산이 되었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큰비가 내리면 산은 물을 품지 못하고 흘려보내 산사태와 물난리가 해마다 반복되었다. 박 전 대통령은 치산녹화 사업을 국정의 요체로 삼고 실무자는 내무부 고건 과장이었다.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

해박한 산림지식과 안목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산림 도시계획 등 교육을 받아 전문가로서 70년대 치산녹화 기틀을 마련. 풍수적으로 국운이 바뀐 것은 치산치수가 이뤄진 즈음이였다. 능력을 인정받은 고건은 1975년 전남 도지사로 임명 37세 최연소 도지사가 되었다. 이곳에서 3년 넘게 도지사직을 수행한 업무 가운데 하나가 전남 담양에 명물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이곳에 메타세쿼이아가 심겨 명물이 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고(高)지사가 이 수종을 좋아했다. 속성수이며 수형이 좋고 가을 단풍이 일색이다. 이후 서울시장직을 수행할 때도 곳곳에 메타세쿼이아를 심었다. 순창에서 담양으로 이어지는 국도는 비포장인데다가 주변논과 높낮이에 차이가 없었다. 눈이 오면 논과 도로가 구별되지 않았다. 그때 가로수가 표지목 역할을 해주었다. 메타세쿼이아는 물에 강하다. 한자명이 수삼(水杉)이다. 논과 도로 사이 농수로 물이 메타세쿼이아를 잘 자라게 했다. 고건시장은 근처 순창에 집이 있어 가끔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어 국수집과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다 순창행 버스를 탄다. 순창군도 공조해 메타세쿼이아길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담양에는 입장료를 받기 시작해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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