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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항일투사 김태동 탄신 120주년호석 추경화/진주 문화원·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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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6  19: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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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 추경화/진주 문화원·향토사학자-항일투사 김태동 탄신 120주년

김태동(金泰東)선생은 안동김씨 김용환과 최규이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김태동(1897~1982)선생은 기독교 호주선교단체가 진주시에 설립한 광림학교 졸업생이고 뒤에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3월 18일 서부경남 중심지 진주시에서 대한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할 때 한규상, 장덕익, 천명옥, 김영조, 이영규, 박성오 등 광림학교 졸업생들과 함께 시위대 선두에서 군중을 지도하고 이 때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하여 시내 5곳에서 일제히 시위를 전개하고 경남도청 정문으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김태동 선생도 선도했다.

다음 날 3월 19일 오후 1시에 광림학교 소유인 악기인 큰 북, 작은 북, 코르넷, 나팔이 진주 시내 대안동 일원에서 울려 퍼지자 감동을 받은 기생, 걸인들도 동참하게 된다.

진주 3.1운동 시작은 3월 18일 12시 교회 종소리를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악기 소리는 19일 오후 1시부터 치고 불었음이 확실하다.

김태동 선생은 한규상 선생과 함께 진주시 대안동 중앙시장에서 시위를 주도하고 한규상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때 동참하게 된다.

<독립선언서>를 다 읽기 전에 일경에 빼앗기고 바로 피체되었음이 확실하다. 일경의 엄중한 조사를 받고 혼절했으며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6월형이 언도되었다.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했다가 취소하니 1919년 6월 17일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구감옥에서 출옥한 시기는 1919년 12월 13일이다. 김태동 선생은 진주에 살지 않고 대구시 남산동 105번지로 옮겨 1968년 까지 살다가 경기도로 이주했다. 경기도 고양시 새문안 교회를 따라 기독교인으로 봉사하다 장로직분을 받았다.

1982년 9월 3일 세상을 떠났고 고양시 새문안 동산에 안장되었다.김태동 선생의 공적을 기리어 정부에서는 2003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김태동 선생의 후손들이 전국 각처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필자가 쓴 <진주항일운동사>에 등재했고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에 건립된 항일투사추모비에 공적을 깊이 새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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