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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미투 & 주홍글씨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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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8  18: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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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미투 & 주홍글씨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예수께서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많은 무리들을 선동하여 이끌고 와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려는 거룩한 서기관과 위대한 바리새인들에게 고요하게 던진 말씀이다. 전통적 권위, 당파적 권력, 사회적 여론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오만방자하게 세속적 권력과 지위와 부를 향유하며 마음껏 갑질을 해대던 서기관계급과 바리새인들의 왜곡된 위선을 꼬집던 예수를 시험하여 파멸시키려드는 그들에게 던진 말씀이다. 그러나 돌을 들었던 그들은 모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하나씩 둘씩 돌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하지만 내로남불을 처세의 기본으로 하는 지금 세상 사람들 같았으면 마치 자기의 무죄를 입증이라도 하듯 더 센 돌팔매질로 여인을 난도질하였을 것이라는 자조적 비아냥도 있다.

“악당은 지옥으로!” 최근 우리 사회를 휘몰고 있는 ‘미투운동’을 신념처럼 확신하여 온 듯 사회적 비난과 비판수준을 넘어 자살로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사회적 광풍에 편승하여 스스로가 마치 정의의 시도인양 광적으로 외치는 사람들도 주변에 더러 있다. 물론 가해자는 비난받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저지른 죄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한다. 더불어 그동안 가슴앓이의 한숨으로 숨은 세월을 살아왔던 피해자들에게는 아낌없는 위로와 따스한 보살핌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성(性)의 문제는 언급하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까다로운 개념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무의식적 집착과 무조건적 단죄의 칼날에 목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알라사 밀라노가 2017년 10월 15일 처음 시작하였다고 알려진 미투운동은 성적 본능에 결합된 문화적 왜곡, 권력의 요소, 제도적 불비(不備), 강자와 약자의 지배복종관계, 무참하게 짖 밟힌 약자의 인권, 싸늘하게 박탈당한 약자의 권리(right)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동시에 유사 이래 지금까지 그치지 못하고 있는 마초(남성) 중심의 전쟁유산, 승자독식, 승자의 만행은 영웅담으로 전해지고, 악행이든 교활함이든 쾌락목적을 달성한 이들의 권모술수 과정에 대한 찌그러진 찬탄과 숭배의식 등을 향한 저항운동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운동은 여성의 정치적 참정권를 주장하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올랭프 드 구주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인습(因習)을 타파하려는 새로운 발걸음이라 하겠다.

이런 새로운 기풍은 주역 제57괘 구오에 근거하여 일부 김항이 주창한 ‘정역’ 사상에도 있다. 이 사상은 롱펠로우가 ‘인생예찬’에서 외치는 ‘투쟁하는 영웅’보다, 나다니엘 호손이 ‘주홍글씨’에서 그려낸 ‘헤스터’의 모습에 가깝다. 치욕의 주홍글씨 A를 가슴에 달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서도 그녀는 입을 열지 않은 채 자기를 손가락질하고 질책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히려 정성을 다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이고 죄 많은 인간을 무한정 사랑하는 신의 모습이다. 정역은 영웅이 기준이 되는 무토(戊土)의 세상보다 이름 없이 헌신하며 모든 이들을 용서하고 안아 들이는 기토(己土)의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우리자신도 모르게 변방의식에 물들어 있다. 자본주의 본산지보다 더 자본주의며, 공산주의 본산보다 더 공산주의고, 불교산지보다 더불교적이고, 기독교본산보다 더 기독교적인 모습이 그것이다. 역시 미투운동을 일으킨 본토보다 더 미투적이다. 하지만 이 운동을 보다 성숙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선 가해자에 대한 영웅적 응징보다, 고질적인 문화와 풍토를 바꾸어야한다. 가해자를 가차 없이 응징하여 카타르시스를 통쾌하게 만끽하고, 악당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 속 시원해지는 것을 백 번 천 번 반복해도 사람이 바뀌지 않고 문화풍토가 변하지 않는 한 바라는 바 참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여 참된 변화를 위해선 권력의 음모와 폭력, 재력의 만행, 상대적 우위에서 오는 갑질 문화행태를 바꿔야 한다. 상한 갈대도 돌보고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배려의 문화로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 이럼으로써 돈과 권력을 누리며 상대적 특권을 행사하였던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지옥이 지겨운 천국으로 되겠지만,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남몰래 눈물 흘렸던 이들에게는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는 쉼터의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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