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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순국투사 제갑석(諸甲錫)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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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1  18: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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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순국투사 제갑석(諸甲錫)

제갑석(1892~1919)선생은 진주시 문산읍 삼곡리 583번지 출신으로 진주시 문산읍 3.1운동을 지도하고 일제 헌병의 총을 빼앗아 부셔버리고 일경에 검거되어 혹독한 고문으로 혼절했다가 만 27세 때 순국하신 분이다.

제갑석 선생을 기리는 추모비가 문산읍사무소 들어가는 삼거리 문산지구대 건너 철뚝 길가에 세워져 오고가는 이들의 발을 멈추게 한다.

1979년 3월 17일 건립된 추모비문은 다음과 같다.

“기미넌 3월 독립운동의 메아리에 이 고장에서도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온누리에 펼치다 용감하게 헌병의 총을 빼앗아 부수고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분사하였고” 문산면민 일동 삼가세움.

1977년 12월 원호청에서 관장할 때 제갑석 선생을 위해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으나 1989년부터 항일투사들에 대하여 재심사에 들어가 순국하신 분들에 대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등급을 올려주었으나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갑석 선생만 등급을 올려주지 않고 제자리인 대통령 표창을 추서한 그대로 유지케 되었다.

이에 장조카 제경만 등이 억울하다면서 탄원서를 제출하고 언론에 호소했으나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제갑석 선생은 호적을 만들면 친일이라면서 호적 만들기를 거부해 호적이 없었고 진주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1940년대 호적이 소실되면서 재판기록도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부인의 호적을 보면 부인은 김해김씨 김말악은 김금준의 딸이고 서로 대조해 보면 확인된다.

제갑석 선생이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 것은 1976년도 당시 진양군수가 주민들의 탄원을 듣고 확인해 주었기 때문인데 정부는 군수 확인서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재판기록만 찾아 오라는 것이다.

친인척 호적을 통해 확인된 호적을 보면 제갑석 선생은 제몽고라는 이름이 있고 족보명은 제정석으로 기록되어 약간 혼돈을 준다.

1978년 8월 문산 삼곡리 공원 묘원에 조성된 제갑석 묘지석에는 호적명, 족보명을 모두 밝혀 놓았다.
2000년 12월 필자가 앞장서서 진주시 금산면 조동 숲가에 조성한 진주진양항일투사추모비에 다음과 같이 깊이 새겨 두었다.

-문산3·1운동 지도 일경총을 빼앗아 부수고 체포, 고문으로 순국한 제갑석-

천만다행으로 2005년 10월 26일 대전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해 안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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