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강사로 활동
사람들은 나를 구운몽이라고 부른다// 구운몽이라고 하면 왠지 귓속말처럼 느껴지지만 너도 알다시피 아직 오늘 밤이잖아 발꿈치를 살짝 들고 말할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밤이었고 충분한 밤이었고 들판에 가득한 밤이었어 너는 밤마다 젖은 구름으로 왔고 고양이 없는 웃음으로 왔고 때로는 눈보라 눈보라로 왔지 내가 사과 하나를 들고 똑같이 나누자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졌어 오늘 밤 너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지만 호주머니를 잃어서 슬퍼라고만 할게…/ (‘내 이름은 구운몽’ 중)
경상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국어국문학과 강사로 있는 김지율 시인(45)이 첫 시집 ‘내 이름은 구운몽’(현대시,144쪽,9000원)을 냈다. 김지율 시인은 2009년 ‘시사사’로 등단했고, 2013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이 시집은 ‘소녀’라는 제목의 시로 시작한다. 소녀는 여성성이나 페미니즘 어느 한쪽으로 쉽사리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말한 소녀는 “주체이며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선천적인 욕구와 또 한쪽에서는 피동적 존재이기를 원하는 사회적 압력 사이에서 격심한 투쟁을 하는 존재”라고 했는데, 이러한 소녀는 인간의 불가능 혹은 가능의 표상이기도 하다.
해설을 쓴 평론가 장철환은 “김지율은 민감한 눈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예민한 귀의 소유자임을 ‘소리’로써 입증하는 시인이다. 김지율 시인의 기이한 발화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자리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운몽’이라고 칭하는 자와 대면하게 되는데, 우리가 그의 시집에서 최종적으로 귀를 닫기 전에 들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김지율 시인은 김수영과 최승자의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세계의 뿌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에너지를 믿어요. 절망과 비극에서 나오는 힘은 또 다른 세계와 미지로 우리를 끌고 가죠. 그곳이 현실일 때도 있지만 꿈속일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곳이 어디든 세계는 공포영화처럼 우리를 늘 교란시키거나 불안에 떨게 하죠”
꿈같은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구운몽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현실의 불안과 슬픔과 분노 속에서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매일 꿈을 꾼다고 말한다. 그 현실들은 끔찍한 진실이고 그것을 때로는 비밀이라고 말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숨기고 있는 비밀, ‘말하지 마, 너만 알고 있어’(‘소녀’ 중)라고 말하는 그 비밀을 지키려는 혹은 누설하려고 하는 시인은 말한다.
“뛰어내릴 빈 곳이 어디에도 없어요 한 발짝도 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몸속으로만 울다 죽은 사람들 나는 당신의 피 묻은 책이 두렵고 미처 도망간 자들과 추방된 자들 사이에서 늘 쫓기고 있습니다 뒤를 돌아본 얼굴과 말이 없었던 사람들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왜 그렇게 살고 있느냐는 말 어디쯤에서 뜨거워져야 하는지…”(‘멀리서 온 책’ 중)
윤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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