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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갑질과 미투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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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3  18: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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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갑질과 미투

이제 참지 않는다. 없이 사는 놈은 눈만 흘겨도 서러운데 쪽박까지 걷어차이니 그 통탄할 심사(心事)야 오죽하겠는가? 상것이 성(姓)이 있나 성낼 줄 아나, 그저 자기 몰래 얻은 목숨 행여나 실바람에 꺼질 새라 바람 앞의 등불마냥 한 목숨 잇기에 바빴다. 그리하여 억울해도 참고, 알면서도 눈을 감고, 비감(悲感)한 채 알아서 기며 사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에서 이런 일들은 참으로 비일비재 하였다. 이의 반작용으로 어떤 이들은 억울해서 출세하고 기를 쓰서 악착스레 돈을 모았다. 상전벽해(桑田碧海)고 천지개벽(天地開闢)이다. 이런 세상이 언제 어디 있었나 싶다. 이제 온천지가 내세상이 아닌가. 상것이 권세를 잡으니 세상이 코딱지만 하게 보이고, 거렁뱅이가 거액을 주무르니 사람이 개미새끼보다 못하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는 어느새 법칙으로 굳어졌다. 상놈의 양반행세로 온 세상이 구린내다.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사랑이란 구걸하여 얻을 수도 있고, 돈을 주고 살수도 있지만, 폭력을 사용하여 뺏을 수는 없답니다”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에서 카밀라의 입을 빌어 한 말이다. 물론 그는 ‘사랑은 구걸해서 안 되는 것’이라고 데미안에서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걸한다’는 것과 ‘산다’는 것은 상대방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만, ‘빼앗는다’는 것은 폭력으로서 상대방의 동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강제적으로 겁탈(劫奪)하는 것을 말한다.

갑질과 미투는 그것이 거대한 것이든 털끝만큼 미미한 것이든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가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거나 희롱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군사남성문화에서 배태된 상대적 남성우월주의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고 대개 미투 피해 고발자들은 여성들인 경우가 많다. 반면 마이클 더글라스와 데미 무어가 주연으로 출연한 1994년의 영화 <폭로>는 여성 상사가 남자부하직원을 강제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갑질에 대한 동양적 처방은 의(義)다. 그것도 바른 의(義) 즉 정의(正義)다. 정의란 공정하게 갈라 먹는 것이다. 무작정 똑 같이 나누어서 갈라 먹는 것이 아니라 많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많이 적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적게 저마다의 형편을 살펴서 불평 불만없이 갈라 먹는 것을 말한다. 의(義)란 한자는 양(羊)을 잡아서 내(我) 몫만큼 가져오는 것을 뜻한다. 즉 공정한 분배정의를 말한다. 이런 자기 몫에 대한 공정한 접근은 또한 사람 개개인에 대한 동등한 인격적 인정과 그의 천부적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하는 주는 것과도 연결된다. 모든 사람의 존재가치는 모두다 똑 같다. 이른바 대동사상(大同思想)이다. 이것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는 폭군(暴君)이며 일개 필부(匹夫)에 불과하기에 권력에서 내 몰아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을 모르는 권력자는 어두운 군주 즉 암군(暗君)이기에 이 역시 권력에서 내어 몰아내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하여 권력은 오로지 대인과 군자의 성정을 지닌 사람만이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다.

성적 일탈에 대한 동양적 접근은 조금 복잡하다. 성(性)은 그야 말로 저절로 마음(心)이 생(生)기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그동안 자연발생적인 성에 대한 인위적 조처들이 오히려 모두 무색하게 되거나 역작용내지 부작용으로 표출되는 경우들도 많았다. 특히 남녀의 성(性)은 본능적 ‘끌어당김’이다. 다만 이 본능적 끌어당김 행동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제각기 엄청난 차이가 나기에 이후 전개되는 문제가 참으로 복잡하다. 그리하여 오죽하였으면 유가(儒家)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 하였을까.

어떻든 갑질이든 미투든 그 시비의 본질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폭력여부다. 민주주의는 이 부당한 폭력행사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발전해 왔다. 우리사회는 지금 권력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룩했지만 경제의 민주화는 아직까지 꿈만 같다. 하물며 인권과 성에 대한 개개인의 의식세계와 문화의 민주화에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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