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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경남 서부와 임시정부(3)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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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5  18: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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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경남 서부와 임시정부(3)

최원형(崔垣亨)선생은 경주 최씨로 사천지역에서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된 최범술의 숙부이며 1907년에 국채보상운동 사천지역 핵심 지도자였던 최채술의 아들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에 진 빚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으로 남녀노소, 신분고하, 종교불문하고 27만 여명이 십시일반으로 연보한 사건으로 동래상인들과 대구에서 먼저 시작했다.

11세에 곤양보통학교에 입학하니 항일투사 조우제 선생이 교사로 근무중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보통학교 졸업 후 경기고보에 입학하여 졸업을 앞두고 서울 3.1운동에 참가하고 피체되었고 엄중한 조사를 받고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처분을 받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에서 임시정부를 위한 주일외교관계 담당으로 미.영.불의 사절로 활약하다가 요시찰 인물로 일경에 피체됨이 수십 차례였다.

임시정부 자금 조달을 위해 밀서가 귀향하는 소녀편에 의탁되었으나 일경의 검문에 발각되어 동경에서 피체되었다.

최원형 선생은 거물 정치인이라 하여 악형을 더하고 조선인이 조선 독립을 위함이 무슨 죄가 되느냐 라고 항변했다.

징역 5년형이 언도되었고 대전형무소로 옮겨 복역중 1945년 2월 8일 혹한으로 옥중에서 돌아가시니 순절. 순국이다.

1994년 10월 21일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 2묘역 2-269에 안장되었다.

하동노(河東老)선생은 임시정부를 위한 목적으로 1919년 4월경 황종화. 하남식 등과 함께 경남단이란 항일단체를 만들었다.

임정을 위한 금전 수입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일경에 발각, 피체되었고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사기 미수 및 협박죄로 징역 1년 6월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노동공제회 진주지회 대곡면 대표가 되어 활동하는 등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4월경 경남 진주에서 황종화 등 6, 7명이 모여 요즘 서울과 전국 각처에서 항일투쟁이 전개되고 있으니 우리 경남에서도 경남을 대표할 만한 단체를 만들자라고 말하여 합의하였다.

조직 이름을 경남단으로 하고 6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 하용제 등에게 경남단 가입을 권유하고 출자금을 내 줄 것을 희망하였다.

진주부호들을 찾아 다니며 군자금을 모으고 창원 출신 권태용 외 2명을 상해로 파견하여 경남도 금전 수금원으로 귀국하자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진주시 귀곡동 정모 부호로부터 상당액을 받기로 약속한 날 일경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하동노 선생은 1993년 8월 15일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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