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축조된 진주성 토성 흔적 최초 발견
고려시대 축조된 진주성 토성 흔적 최초 발견
  • 한송학기자
  • 승인 2018.10.24 18:23
  • 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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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첩광장 부지서 너비 6m 길이 15~50m 추정

양쪽 돌벽 쌓고 중간은 흙 층층이 쌓은 판축법 축조


▲ 지난 19일 진주성 외성 발굴 작업 중 문헌으로만 전해져 오는 고려시대 진주성 토성의 흔적을 최초로 발견됐다.
▲ 판축법으로 층층이 쌓여진 흔적
문헌으로만 전해져 오는 고려시대 진주성 토성의 흔적이 진주대첩광장 조성부지에서 최초로 발견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4일 진주시와 한국문물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9일 진주성 외성 발굴 작업 중 토성으로 추정되는 성벽의 일부 흔적을 발견했다.

현재 토성으로 드러난 성벽은 너비 6m, 길이 15m 정도로 진주대첩광장 부지 토성의 전체 길이는 50m 정도로 추정된다.

토성은 당시 성벽의 제조 방식인 성벽 양쪽으로 기둥 역할을 하는 돌벽을 쌓아 돌벽 사이에는 점질과 사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 층층이 쌓은 '판축법'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토성은 성벽의 아래쪽 하부 구간의 일부로 일제강점기때 부지 평탄화 작업 중 상부는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서 발견된 진주성 외성은 지대가 낮은 곳으로 당시 평탄화 작업때 훼손되지 않은 하부구간의 성벽이 그대로 보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진주시와 한국문물연구원에서는 토성으로 추정되는 성벽 구간의 조사가 완료되는데로 추가 정밀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한편 진주성은 고려말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中光)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해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직전(1591년) 경상감사 김수가 외성을 쌓았다.

1972년에는 촉석문을 복원했고 1975년에는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졌던 서쪽 외성의 일부와 내성의 성곽을 복원했다. 1979년부터는 성 안팎의 민가를 모두 철거하는 등 진주성 정화사업을 시작해 2002년 공북문 복원 공사를 마지막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한송학·강정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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