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교육의 장(場)
참 좋은 교육의 장(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05.2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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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범/밀양 청도분교 교사
내가 재작년 3월, 산과 숲과 풀꽃들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아늑한 산골 중학교인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전교생은 모두 이십여 명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근무하던 큰 학교에서는 감당해야 될 많은 인원과 하루 종일 꽉 짜인 일과로 인해 아이들과 서로 진지하게 얘기 나눌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고, 몇몇 아이들은 도저히 교육적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도에 한계를 느끼며 당혹스럽고 힘겹기도 했었다.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오롯이 영글게 할 수 있는 참 좋은 교육의 장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환해지곤 했다. 2층 도서실 창문으로 운동장의 몇 안 되는 아이들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며 마치 자연의 일부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저 아이들은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정말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면 내가 근무한 지난 2년 동안에도 선생님들과 우리 아이들은 참 많은 시간을 같이 하고 함께 뒤섞여 보냈다. 틈날 때마다 운동장에서 야구, 피구, 달리기 등을 하며 같이 뛰고 놀았다. 아이들은 방과 후 전체가 참여하는 연극 수업, 특별 운동 수업을 받을 수 있었고, 교육청에서 순회 방문하는 상담 선생님과도 충분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학원이나 놀이시설 등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저녁 시간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운영한 야간 공부방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자습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가끔은 월드컵 경기 응원도 하며 유용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담임선생님들은 몇 안 되는 아이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한몸처럼 같이 호흡할 수 있었다.

작은 산골 마을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아이들의 생각이 혹시라도 좁게 갇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이들과 함께 도시에도 갔고, 높은 산에도 올랐고, 먼 바다에도 갔다. 작년에는 중학교 수학 여행으로는 특별하게 제주도에 가서 함께 땀흘리며 성산 일출봉에 오르고, 아름답게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웃고 이야기하며 올레길을 걷기도 했다.

진정한 학교 교육이 지적, 육체적 성장과 함께 선생님, 친구들과 더불어 삶의 의미를 깨닫고 꿈을 키우며, 정의와 배려, 공동체 의식 등 소중한 인간적 가치들을 배워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면, 이곳은 그러한 교육적 본질에 많이 다가가 있는 매우 의미 있고 특별한 교육 현장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인근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 중 점점 더 많은 숫자의 아이들이 이곳 중학교가 아니라 산을 넘어 가야 하는 시내의 큰 학교에 입학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최근 수년 동안 이어지면서 이곳은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 이제 더 이상 학교의 존속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우리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의 많은 농어촌 학교가 이와 같은 이유로 통폐합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는 교육 문제뿐 아니라 농어촌 지역 공동체 자체의 황폐화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그러면 시골 학교에 아이들이 줄어가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저출산 현상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지금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보다도 소모적 무한 경쟁과 극심한 사교육을 조장하는 학력과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이다. 이곳의 학부모들도 우리 중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위해서 좋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경쟁과 사교육이 있는 환경 안에 있어야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고, 그래서 어떻게 되든 큰 곳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다는 속내를 끝까지 숨기지는 않는다. 큰 학교 안에서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또 주변에 학원이라도 있는 곳에 아이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떠나가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펐다.

이렇게 50년 가까운 전통의 우리 학교는 올해 분교가 되었고, 내년에는 또 그 존폐 문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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