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세밑-내려오는 훈련(訓鍊)
아침을 열며-세밑-내려오는 훈련(訓鍊)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16 17:3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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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세밑-내려오는 훈련(訓鍊)

‘세밑’이란 ‘동지 및 섣달 즈음’을 말한다. 동짓달의 동지(冬至)는 한해의 마지막 마디자 새로운 시작이다.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이로부터 45일 지난 입춘에 바야흐로 새봄 새날의 기운이 땅 위에 번진다. 동지 즈음에 이른바 양기(陽氣)는 줄어들고, 음기(陰氣)가 극성을 부린다, 이때 자칫 건강을 잃기 쉽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여 먹고 뿌리기도 한다. 팥의 붉은 색은 양기를 상징하여 짙은 어둠을 이겨내도록 한다. 또 팥에는 사람 몸에 좋은 다양한 성분이 있으며 그 효능도 대단하다. 팥은 작지만 길고 거대한 어둠의 귀신을 물리칠 대단한 기운을 뿜어낸다. 어떻든 세밑엔 나무꼭대기에 올라앉아 벌벌 떠는 것 보다 얼른 내려와 따뜻한 구들장에 몸을 녹이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필자는 늘 낮은 자리에 있기에 ‘내려가는’이 아니라 ‘내려오는’ 이라 하였다. 필자가 높은 자리에 있다면 당연히 ’내려가는’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이다. 필자는 이날까지 높은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다. 그리하여 낮은 자리에서의 세상사 일들은 많이 겪어 보았으나 높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잘 모른다. 그리하여 말할 거리도 별로 없다.

그러나 낮은 자이에서 본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행태는 항상 똑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늘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들 입에 달고 산다. ‘국민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국민을 위하여…’ ‘팍팍한 서민을 삶을 위하여…’, ‘민생경제를 위하여...’, ‘독재정권을 막고 타도하기 위하여…’,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이런 입에 발린 상투적인 소음(騷音)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더 높은 자리를 향하여 피 터지며 싸워 기어 올라가고, 상대방을 음모하고 음해하며 타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짓을 자랑스런 투쟁력으로 확신하며 얼굴엔 득의만만하다. 그들이 일단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대체로 서민들의 운신의 폭은 줄어들고, 그들의 권한은 커진다. 서민들의 통장은 카드빚과 마이너스 숫자가 늘어나는 반면 그들의 재물은 재산의 수준을 넘어 남을 지배하는 재력의 수준으로 확장된다. 그리하여 일단 그 자리에 올라앉기만 하면 이제는 기어코 그 자리를 지키려 한다. 그 어느 누구든, 그 어느 정당이든 반드시 그러하기에 미헬스는 이를 ‘철칙(iron law)’이라 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솔깃한 구호는 입에 발린 ‘생쇼’에 불과했고, 그들의 ‘빈 말’은 그들에겐 그저 밥 먹듯 하는 일상적인 일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어코 내려오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가 돌멩이를 던지고, 아래서 흔들고, 장대로 쑤시고, 새총을 쏘고, 대포를 쏘아 자리를 박살내야만 높은 자리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내려온다. 아니 추락한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비참하게 추락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연민의 정을 갖기보단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우리의 이지러진 모습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우리들은 높은 자리에서 추락하는 모습들은 줄기차게 보아 왔지만, 자연스럽게 내려와 안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이는 증오보다 칭찬을, 저주보다는 축복을, 비꼼보다는 격려를, 비비 꼬인 비난보다는 도와주려는 마음이 담긴 비판을, 배척보다는 함께하려는 관용과 포용을 발휘하는 훈련이 우리 교육에서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떻든 1등급을 받아야 하고, 권력 서열1등에 올라야 하고, 그런 자리의 힘을 악착스럽게 이용하고, 다른 이들을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것만이 가치 있는 행동이고, 그것이 생존경쟁이라는 자연에서 인생의 본래 모습이라는 묵시적 세뇌교육의 풍토 속에서 성장하고, 암암리에 그런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자세와 사람들과의 행복한 관계 형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노력과 훈련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번 주 세계의 화제는 핀란드 의회에서 선출한 총리 34살의 여성 산나 마린과, 19명의 장관 중 12명이 여성이었다. 여느 국가권력 행태와 매우 다른 모습이어서 얘깃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자연스런 모습이다.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교육한다, 학생회 자치 활동을 권장하고, 활발한 토론 활동을 한다. 만 15세부터 원하는 정당에 가입하여 정당 활동을 하고, 18세부터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

필자는 우리나라가 시기질투하며 기어코 다 함께 공멸해버리고 마는 공명지조(共命之鳥)의 나라가 아니라, 더불어 다 함께 잘 사는 사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하여 우리에게도 올라가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잘 내려오는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흐름과 리듬이 저절로 자연으로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 훈련과 생활 훈련이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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