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입법노동자
아침을 열며-입법노동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08 16:1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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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역리연구가
이준/역리연구가-입법노동자

‘코로나 19’의 발생으로 우리나라를 우습게보고, 바이러스에 오염된 더러운 나라로 단정하여 단호히 그들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가 버린 지가 불과 몇 주 전이다. 아직도 해방 후 미군정 시대와 6·25 한국 전쟁 즈음의 가난하고 못살고 질병 많고 권력에 주눅이 들어 윗사람의 눈치만 보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는 나라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명분은 바이러스의 전파 차단이지만 속셈은 나라 이름도 어디쯤 있는 지도 알 수 없고, 지적 수준과 과학 수준이 형편없으며, 외교적 영향력도 별로 없는 작은 나라쯤에 대해서야 문을 걸어 잠가도 그네들의 일상에 별 지장도 없으리라 생각하였으리라 본다. 그러니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순식간에 백 몇 십 여개국의 나라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입국을 막아버렸다.

우리는 짧디 짧은 순간으로나 없이 살고 가난하게 살고 무식하게 살았던, 그러나 고집과 자존심 하나는 하늘을 찌르듯 그렇게 높았던, 그런 세월의 아픈 상처와 쓰라린 기억이 있기에, 우리를 백안시(白眼視)하며 인정사정없이 딸깍하고 그들의 빗장문 걸어 잠그는 소리에, 그저 눈망울만 껌뻑껌뻑 아무 변명도 못하고, 아무 하소연도 할 수 없이, 아무 소리 아무 말 없이 억장 무너지는 빈 가슴만 쓸어내리기만 하였다.

덴마크 마그누스 헤우니케 보건부 장관이 우리의 제의를 학습된 본능으로 거절(no thanks)하였으며, 정성과 돈을 쏟아 부었던 베트남은 우리 여행객을 공중에서 돌려보냈고,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사례들은 손꼽을라치면 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반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가진 에티오피아는 예전이나 지금도 우리를 도왔고 또 돕는다. 먼 옛날의 일이 아니라 불과 몇 주 전의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상황이 뒤바뀌어버렸다. 물론 우리도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나 우리가 선진국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라들의 상황인식과 대응행태를 보면서 오히려 우리가 아연실색(啞然失色)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우리나라 남녀노소 어느 누구든 모두 잘 알고 있는 조처와 행동들을 우리가 그동안 귀에 못이 앉도록 따갑게 들어 왔던 “선진국, 선진국”들은 겨우 초보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

선진국이라 되뇌었던 이태리의 산소호흡기 수준은, 미국 독일 의사 간호사들의 비닐포대를 방호복 대신으로 걸치고, 의료안경 대신 고글 안경을, 마스크 대용으로 다른 천으로써 만든 마스크 그리고 병원에 접근하기 어려운 의료시스템, 서비스 공급 수단으로서 자본을 최우선시하는 시장경제 중심의 사설병원의 한계 취약한 의료수요자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 수단의 미비 국민의 생명에 직결된 저런 의료시스템이 관연 선진국의 진면목인가? 부자들에게는 천국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접근불가능에 가까운 지옥과 같은 상황의 의료체계가 과연 보편적 복지와 보편적 생명을 지킨다는 선진국의 진면목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바뀌어 우리나라를 롤 모델로 하고, 우리나라의 진단 키트, 마스크, 방호복, 산소호흡기, 방역시스템, 의료시스템을 요구하는 국가들 역시 급속히 늘어 일백 몇십여개국을 넘어서고 있다.

어떻든 눈에 보이지도 않고 쉽게 잡히지도 않은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하여 대량 살상의 위협으로 으스스한 핵무기 이슈도, 주식도, 시장도, 간헐적 국지전도 온 세계가 마치 그림 속의 정경처럼 정지된 느낌이다.

중국은 스스로 긍지와 자신감에 차 있으나 여전히 그 정보의 신빙성에 세계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일본과 스페인과 영국 지도층들의 수수방관에 가까운, 자연의 자연치유능력과 방어면역 형성의 천연성을 외치며, 거의 노자에 가까운 무대응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이런 국가 지도자들의 생명 인식에 대한 무감각과 공감 부재를 보면서 저절로 개탄에 빠진다. 스페인은 장례절차 때문에, 영국총리는 실제로 감염되어 치료를 받고, 일본은 이제야 긴급선포를 하였다. 미국과 프랑스의 호언장담과 자만심이 퍼지르고 있는 현재 상황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바이기에 재론할 필요가 없다.

어떻든 우리는, 우리 모두가 저마다 위대하다. 이는 빈 소리가, 듣기 좋으라 하는 입에 발린 소리가 절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지금 여기서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일주일 남짓이면 이런 위대한 우리들을 위하여 일할 사람을 우리가 뽑아야 하는 선거일이다. 물론 대다수의 후보자들은 국민을 위하기 위한 충정심으로 출사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림에도 아직 입에 발린 소리로는 국민을 섬긴다고 하지만, 속으론 그들의 권력욕 명예욕 출세욕 자만심 그리고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보상심리의 병든 마음으로 나대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것이 적이 걱정스럽다. 후보자 중 어느 한 분의 당연한 발상이 눈에 확 띈다. 국회의원은 ‘입법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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