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통하였느냐
아침을 열며-통하였느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26 16: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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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통하였느냐

한때 유행했던 TV 사극에서 한다하는 양반이 보은의 일환으로 옷을 벗은 아주 나이 어린 여인과 정사를 나눈 후 만족감에 흐뭇해하며 그 여인에게도 반응을 묻는 ‘통하였느냐’는 대사가 유행했었다. 사는 동안 진정과 진실이 통하는지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살맛이 나느냐 죽을 맛이 나느냐가 가름된다. 특히 가까운 지인 사이에서 서로 마음이 딱 맞아떨어지면 사는 게 재미있다. 반대의 경우엔 상대에 대한 신뢰가 금가고 내 삶에 대해 회의가 온다.

대학 때의 일이다. 알바를 하며 동생들을 돌보며 공부를 하던 때였다. 과목이 영문 학사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결강을 해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 자그마하고 말이 신중한 여자 교수님 강의였다. 왠지 진실해 보이는 그의 강의를 사전 말도 없이 빠지려니 걸쩍지근했다. 그의 방으로 가서 결강의 양해를 구했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결강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의 뜻을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뜨악하다가 결석을 출석처리 해달라는 것으로 먹여들었다는 걸 알아차렸고 이에 나는 그게 아니라 강의에 불참하는 걸 미리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둥 마는 둥하고 그 방을 빠져 나왔다. 속으론 내가 무슨 출석 구걸하는 거지로 보여, 구시렁거린 기분은 현재진행형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있다. 한 달이면 한 번 꼴로 기재되는 외부 칼럼 한꼭지가 무척 기다려진다. 어느 날 그 칼럼을 쓰는 사람의 프로필을 가만히 봤다. 놀랍게도 내가 공부했던 대학의 총장을 지낸 분이셨다. 어? 하고 그분의 사진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봤다. 수줍은 듯 살짝 닫혀 있는 전 총장님의 입매를 더 살폈다. 아무래도 일학년 봄학기에 사회학을 가르쳐주던 교수님이 맞다는 심증이 진했다. 지금껏 종종 생각나는 일화와 함께.

폭군 전두환 치하였다. 특히 역사학과 사회학은 물론이고 거의 전 학과에 걸쳐 소논문이나 작은 리포트까지 얼어 죽을 검열이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사회학과 첫 리포트를 제출했고 담당 교수는 강의 후 자신의 방으로 왔다 갈 수 있겠느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요청했고 나는 따랐다. 총각교수님이니 약간의 터무니없는 설렘과 함께. 그는 시종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리포트 작성시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요지를 폈고 나는 시종 건방을 떨었다.

그 일화는 부끄러움이기도 했고 뭔가 진심을 인정받고 지도받았다는 것으로 몇 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상기된다. 그리고 지금도 수시로 진실과 진심이 배반당하는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당해야 하는 생활이 반복된다. 낮 시간에 일하는 카페에 자주 오는 아우님이 있다. 그는 이제 세 살이 된 손녀를 어렵게 키운다. 그 어려움이 짠해서 나름 그를 돕고자 손녀가 태어난 때부터 과자 값이라도 댄다. 그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해서 자주 시키는데 찻값을 내는 게 못내 안타까워서 내가 서너 번 사면 자네가 한 번쯤 사소, 라고 찻값 걱정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내가 말했다. 그는 너도 찻값을 좀 자주자주 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다른 지인에게 이제 아메리카노도 못 마시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로 통하지 않으니 오늘 밤은 살맛 없는 밤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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