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춘추는 삼국통일의 영웅인가?
아침을 열며-김춘추는 삼국통일의 영웅인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2.03 16:04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김춘추는 삼국통일의 영웅인가?

신라와 백제의 계속되는 영토전쟁 중에 신라 김춘추의 막내딸과 사위가 642년 7월경 대야성의 전투에서 백제군에 의해 죽게 된다. 이때를 기록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김춘추는 며칠 동안 넋을 잃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춘추가 가장 아꼈던 딸의 죽음은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가슴 깊이 사무치게 한다. 당시의 군사력으로 볼 때 자력으로는 도저히 백제를 이길 수가 없다고 판단한 김춘추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만나 백제를 무너뜨릴 방도를 찾으러 동분서주한다.

이에 연개소문은 고구려, 백제, 신라는 이름만 다를 뿐 단군 자손으로서 한민족인데 굳이 싸울 필요가 있는가, 그러지 말고 우리 삼국이 힘을 모아 당을 치자고 역제안을 한다. 이 말을 들은 김춘추는 연개소문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이에 화가 난 연개소문을 김춘추를 옥에 가두게 된다. 연개소문으로서는 남쪽이 안정되어야 마음 놓고 당을 견제할 수가 있는데 김춘추가 자꾸 백제와의 전쟁을 고집하니 놔두다가는 곤란하다는 판단 하에 일단 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의 김유신은 고구려 접경지로 군사를 이동시키게 되고 이에 연개소문은 불필요한 전쟁은 말아야겠다는 판단 하에 김춘추를 놓아주게 된다. 이렇게 고구려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김춘추는 즉각 당의 측천무후에게 가서 머리가 당에 닿도록 고개를 숙인 후 신라를 도와달라고 구걸하게 된다. 안 그래도 동방에서 가장 뻣뻣한 고구려의 콧대를 내려 앉히려고 노심초사하던 당은 신라가 고구려의 후미를 때려주기를 바라고 있던 차였기에 이를 거절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김춘추는 백제에 한이 서려 있었기 때문에 백제를 친다는 생각이 앞선 것이지 막강한 고구려를 동시 공격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1차 난관을 헤치고 김춘추는 백제를 멸하기 위하여 의자왕에게 미녀 첩자를 파견하여 의자왕의 후궁이 되게 하여 현혹하는 등 첩보전도 동시 수행하게 된다.

의자왕은 김춘추의 의도대로 급격하게 타락하게 되고 국사를 외면하는 등 백제는 서서히 도탄에 빠지게 되고 급기야 성충, 홍수, 계백 같은 충신을 멀리하고 백제의 고급정보는 속속들이 신라로 들어가게 된다. 정보전에서 앞선 신라는 당과 연합, 결국 백제를 무너뜨리게 된다. 한편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자 대막리지가 된 남생이 형제간의 다툼으로 당나라로 도망을 가게 되었고 당에서 벼슬을 얻은 후에 다시 고구려를 침공하여 마침내 668년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김춘추는 개인의 원한을 갚고자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두 나라를 망하게 하고 고작 얻은 것은 대동강 이남의 땅이었다.

그나마도 그곳을 지키기 위해 연합했던 당군을 몰아내기 위한 신라의 피와 땀도 적지 않았다. 이후에 대조영이 재건한 발해가 만주대륙을 경영한 일 외에는 우리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만주대륙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또한, 남생은 개인적인 영달에 사로잡혀 적국의 장수가 되어 모국을 치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으니 인성과 국가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자가 국가를 경영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준엄하게 일러주고 있다. 살아있다면 지금도 김춘추와 남생은 자신들의 행동이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 같은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백성이 우리 땅에서 죽어가고 당으로 끌려갔겠는가, 실로 어리석기가 만고의 바위에 새길만하다. 김춘추는 신라 처지에서 보면 영토를 넓히고 주변국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한 영웅이겠으나 민족적 차원에서 보면 작은 의식에 사로잡혀 외세를 끌어들인 소영웅 주의자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물들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다. 자기 당의 이익을 위해서는 힘없는 국민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있다. 잘 살펴볼 일이다. 외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내분이고 분열이다.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수, 당을 물리쳤던 고구려는 내부분열로 맥없이 무너졌다. 그것은 바로 홍익정신을 망각하고 당리당략과 집단이기주의에 눈이 먼 개인적 사욕이 불러온 참화였다. 빌어먹을지언정 역사에 부끄러운 일은 절대로 하지 말자. 가화만사성을 넘어 이제는 도화만사성과 국화만사성을 이루어나갈 때이다. 우리나라에 기회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