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중심과 주변
아침을 열며-중심과 주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1.31 14:39
  • 14면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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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중심과 주변

나는 공식적으로 현대독일철학이 전공인데, 이런 제약에 얽매이는 것을 좀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넘나들면서, 다른 분야들을 다양하게 기웃거렸다. (심지어 아낙시만드로스, 파르메니데스, 공자, 노자, 부처, 예수까지도 건드렸다) 그러면서 199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프랑스철학에 대해서도 제법 관심을 기울였는데, 말이 그렇지 그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프랑스철학자들은 말을 굉장히 에둘러 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그 핵심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해 비교적 단도직입적인 독일철학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좀 짜증이 날 정도다. 베르크손,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스트로스, 푸코, 데리다, 들뢰즈, 리오타르…다 마찬가지다. 세르, 바듀 등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 난해하고 복잡한 그들의 글을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문맥이랄까 행간에서 어떤 단순하고 이해 가능한 메시지가 까꿍 하듯이 그 얼굴을 드러내고는 한다. 그 내용들이 은근히 매력적이다. 호소력이 있다.

그 중의 하나, 데리다에 의해 유명해진 이른바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다. 예컨대 로고스중심주의, 음성중심주의, 남근중심주의…등등이 그의 철학적 법정에서 단죄되며 해체의 대상이 된다. 정통철학에 대한 반란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는 니체의 이른바 망치의 철학을 계승한다. 나는 체질적으로 이런 삐딱한 시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심주의에 의해 밀려난 ‘주변’의 변호 내지 복권의 시도라는 점에서는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시선 자체가 따뜻한 휴머니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사설이 길어졌다. 죄송하다. 실은 이러한 철학적 논의들이 그저 현학적인 말놀이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아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른바 ‘중심’은 푸코의 말을 원용하자면 일종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그것이 이른바 ‘주변’에 대해 폭력을 휘두른다. 주변은 중심에서 밀려나 etc 즉 ‘기타 등등’으로 하찮게 취급된다. 푸코 데리다 리오타르 등은 그런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 변호를 자처하고 나선 철학적 인권변호사인 셈이다. 화려한 벚꽃이나 모란만이 꽃이 아니다. 제비꽃이나 패랭이꽃도 꽃이라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그런 논리다.

그게 우리 인간들의 아픈 현실과 무슨 상관? 그런 시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 같은 지방대학의 교수들은 곧바로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2021년도 대입 지원율을 보면 우리 한국사회에 중심-주변이라고 하는 이 이분법이 엄연한 현실로서, 더욱이 아픈 현실로서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크게는 수도권이라는 중심과 지방이라는 주변, 수도권도 인서울이라는 중심과 인천-경기라는 주변, 인 서울도 이른바 스카이라는 중심과 기타라는 주변, 지방도 이른바 국립이라는 중심과 사립이라는 주변, 국립도 이른바 지역거점이라는 중심과 지역중심이라는 주변…그렇게 수많은 대학들이 이중삼중의 장치 속에서, 그 강력한 원심력 속에서, 주변으로 주변으로 무력하게 밀려난다. 아마 조만간 그렇게 밀려난 주변대학들은 현실 속에서 지워져 소멸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존재의 상실은 실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려는 ‘반-중심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수십만이 죽어나가는 이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한가하게 무슨 철학적 담론이냐고? 아니다.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도 엄중하지만, 그게 모든 문제를 흡인해버리는 블랙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 와중에도 인간의 삶의 현실들은 여전히 고스란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2021년, 지방의 대학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개시된 것이다.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고 이 위기는 이제 해마다 가파르게 고조될 것이다. 특단의 조치들이 내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대학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연결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그 국가적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화상을 입게 될 것이 아마 ‘주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주변이 그저 흙발에 밟혀도 좋은 etc, 혹은 잡초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화단의 꽃만이 꽃이 아니다. 노변에 핀 꽃도 예쁜 꽃이다. 밟혀 사라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꽃인 것이다. 눈길을 조금만 돌려도 바로 보일 것이다. 지방의 대학에도 중심 중의 중심인 스카이대학의 교수들 못지않은 우수한 인재들이 넘쳐날 정도로 많이 있다. 5년 후 10년 후 그들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 나는 참으로 궁금하다. 저 ‘…중심주의’는 21세기의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도마 위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주변을 그저 흙발로 밟아버리는 것은 결코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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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1-31 21:25:59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blog.daum.net/macmaca/3131


윤진한 2021-01-31 21:25:05
어거지를 피우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
@
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수천년간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국.수천년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윤진한 2021-01-31 21:24:19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유교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天生蒸民), 하느님이 선택하신 공자님의 天命.天德등과, 하늘에 죄지으면 빌곳이 없다는 공자님의 인의예지신, 공맹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삼강오륜과, 모든 인간이 노력하면서 군자의 길을 가야하는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수천년동안 동아시아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온 세계종교입니다. 주권없는 패전국잔재 奴隸.賤民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일본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막무가내 어거지를

윤진한 2021-01-31 21:23:26
하느님의 종교인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의 정체성을 확실히하고, 하느님과 별개의 철학인 도교,불교를 이해하는것도 어느정도 필요합니다.도교는 유교처럼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天生蒸民)하신 점에 주안을 두지 않고, 후대에 갈수록 불교의 보살같은 용어도 사용하여,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수천년 이어진 유교의 하느님(天).공자님과 맞지는 않습니다. 불교는 원래부터 창조신 브라만에 항거하여 부처가 새로 만든 후발신앙으로 브라만을 섬겨온 인도에서도 다시 배척받게 된 인도발 신앙입니다. 창조신보다 높다는 Chimpanzee류의 부처를 받드는 무신론적 Monkey철학임을 염두에 두고, 불교와 섞인 후대의 중국 도교도 그런 위험을 가지고 있는 철학임을 염두에 두고 철학.민속적으로만 접근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