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중심과 주변나는 공식적으로 현대독일철학이 전공인데, 이런 제약에 얽매이는 것을 좀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넘나들면서, 다른 분야들을 다양하게 기웃거렸다. (심지어 아낙시만드로스, 파르메니데스, 공자, 노자, 부처, 예수까지도 건드렸다) 그러면서 199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프랑스철학에 대해서도 제법 관심을 기울였는데, 말이 그렇지 그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프랑스철학자들은 말을 굉장히 에둘러 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그 핵심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해 비교적 단도직입적인 독일철학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좀 짜증이 날 정도다. 베르크손,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스트로스, 푸코, 데리다, 들뢰즈, 리오타르…다 마찬가지다. 세르, 바듀 등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 난해하고 복잡한 그들의 글을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문맥이랄까 행간에서 어떤 단순하고 이해 가능한 메시지가 까꿍 하듯이 그 얼굴을 드러내고는 한다. 그 내용들이 은근히 매력적이다. 호소력이 있다.
그 중의 하나, 데리다에 의해 유명해진 이른바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다. 예컨대 로고스중심주의, 음성중심주의, 남근중심주의…등등이 그의 철학적 법정에서 단죄되며 해체의 대상이 된다. 정통철학에 대한 반란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는 니체의 이른바 망치의 철학을 계승한다. 나는 체질적으로 이런 삐딱한 시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심주의에 의해 밀려난 ‘주변’의 변호 내지 복권의 시도라는 점에서는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시선 자체가 따뜻한 휴머니즘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인간들의 아픈 현실과 무슨 상관? 그런 시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 같은 지방대학의 교수들은 곧바로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2021년도 대입 지원율을 보면 우리 한국사회에 중심-주변이라고 하는 이 이분법이 엄연한 현실로서, 더욱이 아픈 현실로서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크게는 수도권이라는 중심과 지방이라는 주변, 수도권도 인서울이라는 중심과 인천-경기라는 주변, 인 서울도 이른바 스카이라는 중심과 기타라는 주변, 지방도 이른바 국립이라는 중심과 사립이라는 주변, 국립도 이른바 지역거점이라는 중심과 지역중심이라는 주변…그렇게 수많은 대학들이 이중삼중의 장치 속에서, 그 강력한 원심력 속에서, 주변으로 주변으로 무력하게 밀려난다. 아마 조만간 그렇게 밀려난 주변대학들은 현실 속에서 지워져 소멸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존재의 상실은 실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려는 ‘반-중심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수십만이 죽어나가는 이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한가하게 무슨 철학적 담론이냐고? 아니다.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도 엄중하지만, 그게 모든 문제를 흡인해버리는 블랙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 와중에도 인간의 삶의 현실들은 여전히 고스란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2021년, 지방의 대학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개시된 것이다.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고 이 위기는 이제 해마다 가파르게 고조될 것이다. 특단의 조치들이 내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대학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연결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그 국가적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화상을 입게 될 것이 아마 ‘주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주변이 그저 흙발에 밟혀도 좋은 etc, 혹은 잡초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화단의 꽃만이 꽃이 아니다. 노변에 핀 꽃도 예쁜 꽃이다. 밟혀 사라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꽃인 것이다. 눈길을 조금만 돌려도 바로 보일 것이다. 지방의 대학에도 중심 중의 중심인 스카이대학의 교수들 못지않은 우수한 인재들이 넘쳐날 정도로 많이 있다. 5년 후 10년 후 그들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 나는 참으로 궁금하다. 저 ‘…중심주의’는 21세기의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도마 위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주변을 그저 흙발로 밟아버리는 것은 결코 답이 아니다.
저작권자 © 경남도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blog.daum.net/macmaca/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