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안수정등(岸樹井藤)
진주성-안수정등(岸樹井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25 13:5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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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안수정등(岸樹井藤)

요즘 학교와 시내 곳곳 벤치가 있는 곳에서는 등(藤)나무 꽃이 절정이다. 등나무는 콩과식물로서 줄기가 10m 이상 길게 자라는 덩굴성 식물인데, 4월 하순에서 5월초가 되면 은은한 자줏빛의 탐스러운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꽃 뭉치가 아래로 늘어지면서 아름답게 핀다. 줄기는 질겨서 등공예의 재료로 쓰이고 덩굴성으로 자라는 생육 습성 때문에 학교의 교정 한구석에 여름철의 따가운 햇볕을 가려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 향수 젖은 식물로 기억된다.

불교의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에 등나무와 관계되는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가 나온다. 한 남자가 광야를 가는데 코끼리가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생사 갈림길에서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늘어져 있었다. 남자는 급해서 등나무 넝쿨 하나 붙들고 우물 속에 내려가다 보니 우물 밑바닥에는 구렁이들이 있고, 우물 중간에는 4마리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 삼아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지려 하고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넝쿨을 갉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무 위에 지은 벌집에서 뭔가가 떨어져 그의 입속으로 흘러들었다. 맛을 보니 달콤한 꿀이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도 잊은 채 다섯 방울씩 떨어져 내리는 꿀을 받아먹는데 정신을 팔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그네는 어리석은 중생을, 코끼리는 무상의 이법(理法)을 의미한다. 우물은 생사를, 등나무 뿌리는 수명을, 구렁이는 죽음을, 네 마리의 독사는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땅 물 불 바람(四大)을 상징한다. 흰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을, 들불은 늙음과 질병을, 벌은 우주와 인생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다섯 방울의 꿀은 식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의 오욕락(五慾樂)을 각각 뜻한다. 범부중생의 고통과 미망(迷妄)을 묘사하고 있는 이 비유는 인간의 존재와 삶을 돌아보게 하는 법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실존적 한계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중생들은 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오염되어 고요와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근심과 걱정, 고통과 번뇌, 시기와 질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다. 중생들의 위태로운 삶을 일깨우는 가르침인 ‘안수정등’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삶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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