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DMZ에 묻어준 국군 영웅이 생각나
도민칼럼-DMZ에 묻어준 국군 영웅이 생각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6.24 15:2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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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
김기원/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

해마다 6월을 맞으면 부산 유엔묘지공원을 찾아 터키 병사 묘비에 헌화·헌다를 했다. 근래 코로나19 역병에 휘말린 순간 까마득하게 지어진 벽지 문양에 검은 딱지처럼 붙어 지워짐 없는 군 생활의 추억들이 하얀 머리카락 끝을 통해 피라 침의 지극으로 긴장시킨다. 때마침 남북 화해 분위기로 6·25 한국전쟁 때 전사한 유해 발굴 중개 모습을 보는 순간 대학 2학년 때 군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과 특과를 마치고 DMZ 내 ‘민정경찰’ 병사로 1959년 9월부터 1960년 10월까지 군복무 했던 사나이였다. 그곳은 휴전될 무렵 아군 중공군 북한군이 한 치의 요새지를 더 확보하러 어느 전선보다 치열한 전투를 하였다고 한국 전쟁사에 기록된 지점으로 짐작된다.

세월이 흘러 잡초와 가시덩굴이 우거진 산 중턱에 흔적으로 남은 교통호를 조심스럽게 수색했다. 10 박격포 신, 칼뱅 M2 총열, M1 총알, 총 맞아 깨어진 철모, 짝 잃은 군화, 나일론 수건, 탄피, 물통, 수류탄 등이 당시 전쟁의 잔물로 휴전협정 이후에도 돌봄 없이 잡초 속에 그대로 방치됨을 발견하고 지뢰 매설 출입 제한지역이지만 조심스러워 현장에 접근해 흙을 뒤집어 녹슨 철사에 끼워진 03짜리 군번 2개를 발견했다, 흩어진 뼈를 모아 삽으로 깊이 묻고 총구멍 난 철모를 덮고 고이 잠에 들라 묻어 주었다. 또 썩은 군복을 뒤집을 때 비닐 첩에 젊은 여자 사진 한 장을 발견해 동행 조원의 눈시울이 적시지는 순간 “이제 극락왕생하소서!” 라 외쳤다. 경계병 2명을 제외한 5명은 M1 총대를 뒤집어 세우고, 조장의 선창에 따라 ‘전우야 잘 있거라’ 군가를 합창했다. 기타 자료는 조장을 통해 본부로 보내졌다. 그곳은 DMZ LINE 가까운 곳이라 휴전 이후 5년 동안 잡초에 묻어 인적의 혜택을 못 입은 곳으로 생각되어 지금도 그 자리가 생생하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좀 더 설명하면 1953년 6월25일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 남쪽과 북쪽이 최종 결정된 국경선이 ‘군사분계선’으로 폭 간격 1m 정도 사이를 두고 단선 철조망이 1m 높이로 양쪽으로 연결됐다. 남쪽은 영어와 한글로 DMZ LINE(군사분계선). NO 0-0000로 기록된 팻말이 세워졌고 북쪽은 한자로 ‘軍事分界線 番號 0-0000’ 팻말이 세워져 있다. 남쪽, 북쪽 영역으로 표시된 그 지점부터 남쪽 2km로. 북쪽 2km 합계 4km 사이가 DMZ 비무장지대)이다. 1m 공간 사이를 공동 순찰, 공동 관리하는 병사의 공통 호칭이 ‘민정경찰’로 남쪽은 백색, 북쪽은 적색 한문으로 기록된다. 복장은 남쪽은 계급장 없고 명찰 대신 민정경찰을 붙이고 모자는 백색 철모에 흑색 MP라 쓰고 호신용 무기로 M1 실탄 약간이다. 북쪽은 군복에 모택동 형 군모에 적색 한자로 민정경찰이라 쓰고 호신용 무기는 단발 소총을 소유했다. 근무자의 호칭은 남쪽이 북한 병사를 ‘인민군 병사’, 북쪽이 남쪽 병사를 ‘국방군 동무’라 했다. 휴정 규정에 따라 공격용 무기는 반입이 불가능하다. DMZ를 순찰 관리 병사의 막사를 초소(군사용어, GP) 순찰 조는 남쪽 7명, 북쪽 6명 보안원 1명으로 구성된다. 당시 DMZ GP에 근무하는 병사에게 기본 식사 이외 600원 특식을 주었던 지난 기억들이다.

2021년은 6·25 한국 전쟁의 상처 71주년이다, 그때 국군 62만명, 유엔군 15만명, 북한군 52만명, 중국군 90만명으로 국방부가 추산된 가운데 국군 전사자와 실종자 16만5000여명으로 추정한다. 지금까지 수습되어 국립묘지에 안장한 전사자 유해 2만9000여명은 유해를 찾지 못해 전사자의 위패만 국립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미국 육군 중앙신원 확인 연구소’를 운영했고, 1990년대에 ‘합동 임무 부대’를 창설해 전사자의 유해를 찾아 본국으로 송환했다. 우리 정부는 1999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단’을 창설하여 전사자 유해 발굴 계기를 마련했고, 2003년에 유해 발굴 담당 사업단을 편성하여 한시적 유해 발굴 사업을 2007년 이후 국방부가 맡아 영구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71년 동안 이름 없는 골짝에서 묻힌 한국전쟁 영웅의 유해를 찾기 사업에 국민의 뜻 모아 계속 진행되기를 기원하며 아직 어느 산골짜기에 묻힌 전쟁 영웅을 찾아야 한다. 구호보다 힘을 모으자, 그리고 군번 03짜리 영웅이여 고이 잠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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