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인간의 가장 강렬한 갈망, 성(性)
아침을 열며-인간의 가장 강렬한 갈망, 성(性)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7.15 14: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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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인간의 가장 강렬한 갈망, 성(性)

당신은 성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머리로는 성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성에 대한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있지 않은가? 성을 즐기는가, 회피하는가? 대개 성에 대한 태도와 경험은 그 사람의 삶의 질과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람이 성에 대해 왜곡되거나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좀 더 충만하고 완전한 삶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성욕은 우리의 동물적인 본능이지만 동시에 신성함, 고귀함 등으로 표현된다. 인체를 보아도 그것은 증명된다. 성적기능을 하는 성기는 항문과 아주 가까이 있다. 가장 고귀한 것은 가장 추한 것과 가까우니 항상 주의하고 관리를 잘해야 함을 우리 몸은 스스로 가르쳐 주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런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칫 성병이라도 걸리는 경우라면 그것은 추함을 넘어 위험한 지경까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성욕과 성생활에 대해 무척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다. 성욕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 놀라운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증대시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성욕을 감각적인 쾌락을 넘어 영적인 힘으로 승화시킨다면 성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 힘의 원초적 출발은 성 에너지기 때문이다. 출발은 모두 비슷하지만,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끓어오르는 힘을 폭력배처럼 쓰면 난폭해지지만 이를 타인을 위한 봉사의 에너지로 쓰면 존경과 부러움을 사게 되는 이치이다. 성욕은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갈망이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바꾸기 곤란한 높은 가성비를 가지고 있기에 이에 대한 선한 기준이나 규범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자칫 사고로 연결될 수가 있다.

성은 성 그 자체로 존재감이 있고 즐겨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이 무엇 하러 이런 훌륭한 작품을 우리에게 선물을 하였겠는가, 부모와 하늘로부터 툭 던져진 생명과 성이긴 하지만 성에 대해서는 책임과 목적의식이 중요하다. 책임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즐겨야 하는 것이다. 우주는 음과 양의 두 가지 힘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에 존재하며 균형을 잡아준다. 예를 들어 땅이 음이면 하늘은 양이다. 마찬가지로 낮이 양이면 밤이 음이다. 음은 암컷의 에너지이고 양은 수컷의 에너지이다. 이렇듯 세상은 음과 양에너지의 상호작용으로 돌아가고 수많은 생명체가 음과 양의 만남으로 이 세상에 탄생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음의 에너지를 남자는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 반쪽의 불완전한 존재가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성적인 즐거움을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은 자연스러운 것으로써 뇌에 깊이 각인된 것이다. 수백만 년 전에 걸치는 진화과정에서 인류의 뇌 회로와 호르몬 조절과 같은 놀랍도록 정교한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이 시스템을 통해 인류의 구성원들은 좋은 감정과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상대와 짝을 이루어왔다.

신경과학자들은 사랑조차도 상당 부분 뇌의 활동으로 느끼는 감정이라도 한다. 식욕이 뇌세포의 유일한 에너지원인 포도당의 양에 따라 발생하듯이 성욕 또한 성호르몬의 농도에 따라 발생하고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도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 단계에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으로 상대방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보고 싶은 성적인 욕구가 일어난다.

그러한 시기가 지나면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사랑의 기쁨과 행복감에 젖게 되고 사랑의 안정기를 맞는다. 인간의 천성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천성에 저속하다거나 고귀하다거나 하는 수식어가 붙을 이유가 없다. 성 에너지를 잘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은 수양의 좋은 방법이 될 수가 있다. 성 에너지는 다른 활동을 위한 열정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수가 있다.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듯이 성욕이 느껴질 때마다 성관계를 통해 해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창조적이고 충만감을 주는 일에 전념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통해 몸의 에너지가 잘 순환되면 성 에너지의 파장이 잠잠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가치관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성은 친밀감이 되거나 탐닉이 될 수도 있다. 성숙한 성은 서로를 치유하고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이 진정으로 교감하는 수단이다. 성적인 갈망은 호르몬의 작용이지만 동시에 합일을 원하는 영혼의 갈망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강렬한 생명의 흐름 속에서 하나가 됨으로써 분리 감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을 경험할 수가 있다. 성을 통해 짧은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합일감과 황홀감을 체험한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존재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인간에게는 오감을 넘어서 그 이상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그 감각을 회복함으로써 성에 대한 욕구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주인이 될 수가 있다. 그럴 때 인간성의 가장 고귀한 영역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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