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세상사는 이야기-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7.15 14:5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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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성인이 된 내가 어머니를 가장 애타게 불렀던 때는 45년 전 논산육군훈련소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당시 훈련소 생활은 환경은 열악하고 힘들고 배고픈 날의 연속이었다. 힘든 훈련에 기합까지 당하면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다. 이런 때 제창하던 ‘어머님의 은혜’는 화생방 훈련을 방불케 하는 체루작용으로 산(山)만한 훈련병들이 송아지처럼 엉엉 울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첫 소절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치 보며 눈물 훔치다가 끝날 때는 모두가 황소처럼 울며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렇게 한바탕 울며 어머니를 부르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어머니는 서러운 마음을 달래주고 원망과 복수심까지 풀어주는 묘약이었다.

이맘 때 여름이면 유독 참외와 수박을 좋아하셨던, 3년 전 97세로 하늘나라 먼 여행을 떠나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이제 흰머리가 무성하고 굵은 주름살이 짙어진 60대 중년 늙은이가 되었는데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여전히 강력한 체루작용이 일어난다. 목이 메고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슬픔으로 나타난다. 어릴 때 어머니 품은 넓고 포근해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안식처였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전 요양병원에 계셨던 어머니는 체구마저 왜소하고 피부는 소라껍질 처럼 야위였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며 당신 몸 하나 움직일 때까지는 시골에서 홀로 지내시며 끼니를 때우고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십 원짜리 민화투를 치며 지내셨던 어머니. 그래도 정신줄을 놓으시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 보이시기 싫어 당신의 몸이 아파도 자식들한테 연락하기보다는 혼자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계셨던 어머니. 홀로 식사하면 음식의 맛도 모르면서, 먹히지도 않는 것을 꾸역꾸역 넣고 있었던 어머니.

6~70년대 곤궁한 시절, 버스도 없는 두메산골 오두막집에서 봄이면 그 무거운 함지박에 봄나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포장도 안 된 몇 십 리 신작로를 따라 그 먼 5일 장터에 팔러 다니셨던 어머니. 생선 한 손을 사오셔서 부엌 아궁이에서 구워 몸통은 우리를 주시고 당신께서는 “마, 괴기는 대가리하고 꼬랑대기가 맛있는 기라”하시곤 숯 검댕이 묻은 머리와 꼬리를 드셨던 어머니. 그 말씀이 자식들에게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는 깊은 마음이란 것을 머리가 굵은 후에 알았다.

봄이 되면 양식이 바닥이 난 ‘보릿고개’시절, 어머니는 고구마 빼떼기죽을 끓여 주셨는데 그 달짝지근하면서도 칼칼한 국밥은 내가 먹은 최고의 음식이자 서러운 기억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보수적이고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자식 일곱을 낳아 기르시며 살아온 어머니의 모진 97년. 그 삶이 얼마나 힘겨운 전쟁이었는지는 굳이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그토록 서럽고 아팠던 어머니의 삶을 어떤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인정이 많으셨다. 누군가를 다독이며 뭔가 더 나누어 주지 못한 아쉬움, 이런 것이 역력해 보였다. 주변 이웃 사람들에게는 늘 따뜻하게 대하며 무시로 베푸시고, 특히 친척 사랑은 유별나셨다. 어려서 외가에 갔을 때 외할머니와 외숙부, 외숙모, 사촌들이 너무 반갑게 맞아주었다. 따뜻한 외가에서 처음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어쩌다 만난 친척들도 한결 같이 나에게 보내는 시선이 참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 어머니의 고운 심성 덕(德)이리라.

40 중반 남편을 떠나보내고 집안을 책임지셨던 어머니! 둘째 아들을 먼저 가슴에 묻으셨던 어머니! 오로지 가족만 생각하셨던 어머니! 세상을 깨닫게 하고 가르침을 주신 어머니! 모시 한복과 꽃분홍색 치마가 잘 어울리셨던 어머니! 천진불처럼 웃음이 해맑으셨던 어머니! 그 이름 되내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출중하셨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모든 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투박하지만 깊은 맛이 우러나 입맛을 당기는 묘한 맛이었다. 지금도 어머니가 담근 매콤한 김치가 먹고 싶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을 기대할 수 없다. 자식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넘치도록 주시고, 남에게는 관대하며 정(情)을 넉넉하게 베풀어주신 어머니.

녹음방초의 진초록이 더해가는 7월 중순, 여름과일 수박과 참외를 유난히 좋아 하셨던 어머니가 제일보고 싶고 사무치게 그립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의 아들인 것에 감사합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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