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삼천포 케이블카
세상사는 이야기-삼천포 케이블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7.18 13:1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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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자/시인
백숙자/시인-삼천포 케이블카

코로나로 지치고 무기력해진 자신을 위해 떠나보는 초여름 나들이, 우리는 사천 선진공원을 잠시 둘렀다가 귀무덤을 만나며 사색하고 코발트 빛 시원한 해변에 닿았다.

쫙 펼쳐진 바다는 생명의 사원 같아서 가슴을 넓게 열고 어서 오라 손짓한다. 노산공원 아래서 전복죽 한 그릇으로 공백의 허기를 채우고 각산 케이블카에 올랐다. 굵은 동아줄에 꽉 묶여있는 유리곽 투명한 허공의 문이 찰깍 닫힌다. 닫힌 벽 안에서 벽 바깥쪽 세상을 유유히 관망한다. 분분히 떠서 해감에 물든 색조, 조용한 저 푸르름도 한때는 검붉은 천둥 번개여서 애먼 목숨들이 캄캄한 저 구름 속으로 얼마나 많이 묻혔던가,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삶이, 푸르러서 더 시퍼런 바다가 멍든 아낙의 가슴이듯 그저 말이 없다.

차마 뛰어내릴 수 없던 유리 벽이던 그 하루하루가 좌악 펼쳐지고 두꺼운 유리벽 아래는 해변의 금빛 옷 윤슬이 제 뿔을 공중으로 마구 쏘아 올렸다 되받고 있다. 뙤약볕 아래 녹여 낸 어느 여인의 삶처럼 뜨거운 삼천포 앞바다는 전어보다 흰 뿔을 단 보석이 더 많다. 어부의 팔뚝은 굵은 동아줄이라 케이블카도 밀고 다닌다는 삼천포 사람들, 에메랄드 바다를 껴안고 살아서 그럴까, 삼천포 시인들은 모두 빼어난 시를 남기며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유리 곽에 매달린 삶의 끄트머리가 바다를 순식간에 지나 각산으로 내달린다. 만선의 기쁨같이, 태풍의 두려움 같이 가슴이 뛴다.

저마다 다른 두근거림을 싣고 각산에 오르니 확 트인 푸른 세상이 말초 신경까지 자극한다. 모두 내 발치 아래 있지 아니한가! 바닥의 반대되는 단어, 바로 정상이다. 바다와 배와 다리를 아래에 두고 있으니 잠시 꾸는 꿈이라도 괜찮아, 내심 그윽하고 황홀해 용왕님한테 귀빈으로 환대받으면 분명 이런 기분일 거야! 아~ 그대를 향하던 이 마음도 본래 푸른빛이었던가? 아니던가? 헷갈려서 마음을 한참 더듬으며 단숨에 다도해를 들이킨다. 까마득한 게의 등 닮아 오밀조밀 엎드린 작은 섬들, 빨강 파랑 지붕이 살아있는 게 등짝같이 해풍에 가슴 한 켠을 내어놓는다. 푸른 것들은 모두 숨이 가쁘다. 바다는 늘 숨이 가쁘다.

그물에 걸린 전어 심장도 마구 헐떡인다. 멀리 수평선에서 고깃배가 들어온다. 만선의 나팔을 불면서 팔뚝이 굵은 어부들이 몰려든다. 전어 철이다. 붉은 초간장이 쟁반 위에서 꿈틀거리는 삶과 섞인다. 우리는 모두 푸른빛에 섞이고 또 묶이며 뜨겁게 어우러진다. 발밑이 붉어진다. 각산에 노을이 들어왔다. 나를 반겨 산으로 올라온 물빛이 그대들의 얼굴을 불그스레하게 물들인다.

허공의 문이 열리자 순간 깨어나는 꿈, 발아래 있던 모든 것들이 두둥실 나를 둘러싸고 떠오른다. 그들이 모두 나를 내려다본다. 지상에 내려온 나는 붉은 삶 속에 묶인다. 노을빛에 묶인 전어가 푸른 눈을 깜박이며 그물 밖을 주시한다.

타 지역 케이블카와 전혀 느낌이 다른 것은 삼천포만이 가진 풍성한 인심과 생활력에 물든 개성, 그리고 고향에 대해 품는 관심과 자긍심이 아닐까. 가끔 이렇게 허공에 몸을 맡기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늙어가는 자신을 위한 선물 같아서 마냥 즐거웠다. 뭔가 삶에 변화가 필요할 때, 또 누군가가 애잔하게 그리울 때 잠시 일상을 접어두고 달려와 바다를 만나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열망들이 푸르게 일어나지 않을까. 나를 지배하는 쓸쓸한 우울 뭉텅이가 있다면 푸른 바다에 풍덩 던지고 가야겠다. 그러면 마음도 바다의 품과 빛으로 넓고 푸르게 하나 되리라. 나 자신을 위한 소소한 나들이가 위로와 치유의 선물이 된 하루였다. 가슴을 관통하며 지나간 해풍에 위로와 감동을 받은 나들이, 그 은혜로움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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